자금조달·M&A 시장, 무형자산 가치 평가는 ‘시대적 흐름’
by이후섭 기자
2019.06.28 05:20:00
IP로 부채 상환력 예측…기술 담보 대출도 증가
VC·PEF “원천기술·콘텐츠 경쟁력으로 투자 결정”
[이데일리 이후섭 김무연 기자] 회계업계는 물론 자금 조달이나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기업가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무형자산을 인정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신용평가에서 지적재산권(IP) 같은 무형자산을 평가하는 방법론이 나오는가 하면 기업 인수 시 실질 가치를 추산해야 하는 사모펀드(PEF) 등은 이미 무형자산을 따로 평가·반영하고 있다.
27일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현재 주요 신평사들은 무형자산의 가치를 따로 평가해 신용도에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회계기준에 따른 재무제표상 수치를 인용하는 수준이다.
다만 IP와 기술 등 무형자산 가치를 반영한 신용평가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서울신용평가는 지난해 IP를 반영한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의 신용평가모델을 제시했다. 기업 신용도는 채권의 상환 능력, 즉 채무불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IP가 기업 부도예측에 신호를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신평 관계자는 “기업의 IP특성과 생존가능성간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특허활동이 활발한 기업일수록 생존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며 “IP 시그널이 기업 부도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있어 추가 정보를 제공해줘 신용등급 변별력을 개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신평사들도 고객사가 자산 매각이나 M&A 등 필요에 따라 의뢰할 경우 무형자산 가치 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신평사에서 가치평가를 담당하는 연구원은 “사업결합, M&A나 자산양수 등 이벤트가 있는 기업들의 무형자산 가치를 평가해 인식할 수 있다”며 “현금흐름할인법(DCF) 또는 해당 자산이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거래사례를 차용한 시장접근법을 이용해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지주회사의 상표권에 대한 평가 의뢰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대출 분야에서는 기술력이 우수하지만 담보력이 미약한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기술신용평가(TCB)를 이미 적용하고 있다. 기술평가 과정에서 기업이 보유한 특화 기술이나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도 대상이 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기술금융 대출잔액은 163조원대로 전년대비 28%나 증가했다.
한 TCB기관 관계자는 “이익접근법, 현금흐름할인법 등 평가방법 중 업종별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할 매뉴얼이 정해져 이에 따라 무형자산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며 “자체 평가 후 외부 자문 동의를 얻어 최종 평가가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벤처캐피털(VC)들은 회사 재무제표상 수치보다 무형자산 가치를 보고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 설비나 현금이 많지 않은 스타트업은 유형자산을 토대로 가치를 산정해 투자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VC의 임원은 “바이오 스타트업은 보유한 파이프라인이나 특허, 업체 대표 경력 등을 따져 투자를 진행하고 게임 업체는 보유한 대표 IP,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보유 콘텐츠나 소속 연예인 IP와 판권 등을 토대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무형자산의 가치가 곧 스타트업의 기업가치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전통 제조업에 주로 투자했던 PEF 운용사들도 커져가는 무형자산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매각이 무산되긴 했지만 넥슨 인수 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의 PEF운용사인 MBK파트너스를 비롯해 KKR, 베인캐피털 등 글로벌 PEF운용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넥슨 자회사 네오플이 보유한 ‘던전 앤 파이터’의 가치를 높이 샀다는 평가다.
국내 대표 PEF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도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구주 일부를 104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곽대환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4차 산업혁명과 한류 열풍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IP 등 무형자산을 지닌 업체에도 PEF운용사의 관심이 쏠리는 게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지속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