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대적 흐름 반영한 낙태 헌법불합치 결정

by논설 위원
2019.04.12 06:00:00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토록 하는 현행 형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 초기의 낙태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므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헌재의 판결이다. 이에 따라 1953년 규정된 낙태죄는 내년 말로 법률 효력이 사라지게 됐다.

이번 결정은 그동안 여성계가 요구해 온 ‘전면 비범죄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대변화를 반영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껏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한편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헌재에 위헌 의견을 제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세계적 흐름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불과하다.



낙태죄가 이미 사문화됐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연간 낙태 건수는 약 5만건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최근 5년간 낙태죄로 실제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평균 13명에 불과했다. 실형을 받은 사례도 거의 없다. 5년간 법정에 선 피고인 64명 가운데 8명이 벌금형을 받았을 뿐 대부분은 선고·집행유예에 그쳤다. 현실적으로 낙태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그 과정의 위험이나 비용 부담을 해당 여성이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부작용을 감안한 판결이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으로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됐다. 낙태죄가 없어진다고 해서 자칫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사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나칠 수 없다. 처벌 근거가 없어지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체 보호라는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대체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무분별 낙태를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