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19.04.02 06:00:00
일본의 새로운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정해졌다. 다음달 1일로 예정된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일왕 즉위를 앞두고 일본에서 새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어제 열린 임시각의에서 기존 헤이세이(平成)를 대체할 연호가 이렇게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일본 왕실 역사에서 과거의 모든 연호가 중국 고전에서 유래됐던 전례를 깨고 일본 고전인 만요슈(万葉集)에서 따왔다는 점부터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승계에 미리부터 관심이 쏠리는 것은 한·일 관계의 뿌리 깊은 갈등 때문이다. 새 일왕의 즉위를 계기로 양국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왕이 현실 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제한돼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소신과 처신에 따라 대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레이와’의 의미에 대해 “서로 마음을 맞댐으로써 아름다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듯이 국경을 맞댄 양국관계에서도 새로운 관계설정의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달 말로 물러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우호적인 편이었다. 일왕가의 혈통이 백제계로부터 이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는가 하면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김대중 대통령을 맞아 완곡한 표현으로나마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재위 기간 중 야스쿠니 신사를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는 자체가 기억할 만하다. 그의 부친 히로히토(裕仁)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숙하는 태도를 나타냈다는 평가다.
요즘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파기 상태에 이른 위안부 합의 마찰에서부터 독도영유권, 초계기 근접비행 등에 이르기까지 악재가 쌓여가는 중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기업 재산에 대한 강제압류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등을 돌리고 지낼 수만은 없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일왕 즉위를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돼야 한다.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잊지 않으면서도 마래를 새롭게 다져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