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10명 중 9명만 행복…남은 1명도 행복하게"

by김보영 기자
2018.01.08 06:30:00

[지구촌 육아전쟁 탐방기 핀란드편]
핀란드 사회보건부 복지 개혁 TF위원장 인터뷰
저출산·고령화 변화 반영 못 해…복지 접근성 낮아
2020년 LAPE 개혁…자치주로 복지 수행 일원화

핀란드 사회건강부의 라페(LAPE) 개혁 홍보 포스터. (사진=핀란드 사회건강부)
[헬싱키(핀란드)=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지배, 이후 오랜 내전을 거쳐 어렵게 독립을 이룬 핀란드.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던 핀란드를 단기간 내 복지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건 수십년간 이어져온 ‘모든 국민의 행복이 나라를 지키는 최대 자원’이란 핀란드 정부의 슬로건이다.

지난해 독립 100주년을 맞은 핀란드는 다른 변화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오랜 노력 끝에 복지 시스템을 정착시켰지만 가파른 고령화와 저출산 등 변화한 사회상으로 인해 새로운 난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까지 끌어안겠다며 복지개혁을 진행 중이다. ‘라페(LAPE·Program to address reform in Child&Family Services)’라고 부르는 이 복지개혁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 이 중에서도 부모와 자녀를 위한 복지 시스템을 출산 전 단계에서부터 보완하고 강화함으로써 국민이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게 목표다. 아직 사회안전망조차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예방적 복지를 고민하는 핀란드가 부러울 따름이다.

한네 칼마리(Hanne Kalmari) 핀란드 사회건강부(Ministry of Social Affairs and Health) 라페 개혁 TF 위원장은 “적절한 가정내 양육과 제도권 교육을 받은 아동은 훗날 빈곤과 알코올중독 등 사회적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며 “출산 전부터 부모대상 양육 교육을 실시히는 등 가족지원제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네 칼마리(왼쪽·Hanne Kalmari) 핀란드 사회건강부 라페 개혁 TF 위원장과 마리아나 펠코넨(Marjaana Pelkonen) 복지 분야 수석고문. (사진=김보영 기자)
그러나 핀란드 또한 저출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령화와 경기침체 장기화로 빈곤·소외계층이 증가하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노인·소외계층을 위한 의료복지 강화 또한 핀란드 정부의 고민거리다.

인구 550만명인 핀란드 정부가 연간 지출하는 복지 예산은 2014년 기준 약 30억유로(한화 약 3조 8639억원)다. 이 중 의료 복지 예산이 약 6%(1억 998만 유로(1409억 2500만원)를 차지한다.

문제는 의료 예산의 절반 정도가 정신질환, 노인질환 등 전문, 특수화된 의료 서비스 비용으로만 지출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보편 의료 복지 서비스가 사회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핀란드 전체 국가예산에서 사회건강부에서 지출하는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6.3%다

지역별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다르고 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지나치게 분산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핀란드의 복지서비스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이뤄진다. 핀란드는 18개 자치주로 구성돼 있다. 자치주들은 다시 295개 지차단체들로 나뉜다. 각 지자체들 지역별 특성에 맞춰 주민들이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핀란드의 모성 복지 서비스 중 하나인 네우볼라는 자치주가 관리, 감독하지만 어린이집 보육 및 교사는 지자체 관할아래 있다. 복지 정책을 실천할 주요 기관들의 관리 주체가 제각각이다 보니 각 기관 간 협력이 필요할 상황이 생겼을 때 혼선이 생기기 일쑤다.

복지서비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분산돼 있어 실태 조사를 벌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복지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도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좋은 서비스가 있어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각 지자체로 복지예산과 기능을 이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핀란드 정부가 아동 복지에 지출해 온 예산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2006년 4억 3000만 유로(원화 5512억 6000만원)에서 2010년 이후 6억 2000만 유로(원화 7948억 4000만원)로 증가했다. (사진=핀란드 사회건강부)
핀란드 정부는 10억 유로(1조원)를 들여 대대적인 복지시스템 개혁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 건강·가족 복지분야 예산으로만 1억 3000 유로(원화 약 1290억원)를 배정했다.

한네 TF위원장은 “분산되고 단절돼 있던 각 복지 서비스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소외계층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이번 개혁의 목표”라며 “지역 특성에 맞는 특화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의 장점은 살리면서 서비스 제공하는 주체와 이용자 정보를 통합해 각각의 수요에 맞춰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정부는 300개 가까운 지자체에 분산돼 있는 의료 복지 서비스의 집행 주체를 18개의 자치주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핀란드는 일반 병원 밀집 지역인 의료서비스지구 20곳과 전문의료기관들이 모여있는 특화 의료 서비스지구 5곳에 의료서비스가 집중돼 있다.

한네 TF위원장은 “사회의 가장 기초 단위인 가족을 위한 기초 지원 서비스와 아동 복지 서비스를 강화해 궁극적으로 소외되거나 위험에 빠지는 아동들을 없게 하는 게 라페 개혁의 목적”라며 “18개의 자치주를 복지서비스 컨트롤타워이자 각 지자체와 중앙정부를 연결하는 구심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정부는 모성 및 아동 보호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네우볼라도 조부모 가정 상담 등 노인 지원 서비스를 강화해 고령화 현상에 발맞춰 다양화할 계획이다.

핀란드 정부는 라페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복지서비스는 강화되는 반면 투입하는 예산은 1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내년 계도기간을 거쳐 2020년 이 개혁을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비용은 줄이고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개혁이지만 저항이 만만찮았다고 한다. 변화는 누군가엔 불편과 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간 서비스 수행 기관과 각 부처, 자치주 관계자들은 물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라페 개혁 내용을 알리는 캠페인과 공개 교육을 대대적으로 시행 중이다.

이번 개혁을 통해 핀란드 정부와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수확에 대해 한네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00년에 걸쳐 자리잡힌 기존의 복지 시스템은 핀란드 아동 10명 중 9명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게 도움을 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한 명은 사회적 위험과 고통에 노출돼 있습니다. 이번 개혁은 남은 한 명의 아이도 행복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