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의 귀환]'뽕밭' 강남을 금싸라기땅 만든건…'학군 프리미엄'
by정다슬 기자
2017.12.19 05:30:00
박정희 정부 한강이남 개발 목적
명문고교 강북→강남 이전시켜
특목고 도입후 8학군 쏠림 완화
사교육 발달한 강남 선호는 지속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흔히 서울 강남의 탄생을 ‘뽕밭이 신천지가 되는 이야기’로 비유하곤 한다. 지난 1975년만 하더라도 한강 이남은 ‘서울’(강북)에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기 위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잠원동은 단무지 농사가 잘됐고 서초 일대는 꽃동네였다. 압구정동은 배나무 과수원골, 도곡동은 도라지 특산지였다.
그러나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박정희 정부는 서울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 한강 이남 개발이었다. 강북 거주자들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는 당근책을 마련해야 했다. 명문 고등학교의 이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종로구 화동에 있던 경기고를 시작으로 휘문고·정신여고·서울고 등이 잇달아 한강 이남으로 이전했다.
여기에 박정희 정부는 1980년 거주지 중심의 ‘완전학군제’를 도입했다. 서울을 지역에 따라 9개 학군으로 나누고 거주지 주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길을 터놓자 이른바 명문고 주변으로 집을 옮기려는 수요가 증가했다. 강남 쪽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고, 이는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우수한 교육 환경은 1990년대 초반 조성된 분당·일산·부천 등 수도권 1기 신도시가 이른 시일 내 정착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분당 서현고와 일산 백석고, 부천 부천고 등은 입시 명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2002년 경기도에 고교 평준화가 도입한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KB주택가격 동향자료에 따르면 2001년 초부터 2003년 초까지 2년간 서울 강남권 주택매매가격지수는 20.4% 상승한 반면 고양이나 부천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역은 17.0% 정도 올라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더뎠다.
오히려 고교평준화는 서울 내 주택 가격을 많이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KB국민은행은 “지역 간 변별력이 낮아지자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좋은 서울로 중·고등학생 전입이 증가했고 2002년 대입전형자료 다양화가 시행되면서 논술, 내신 성적, 포트폴리오 등 대학 전형이 다양해지자 사교육 수요가 늘고 서울 전입 인구도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2008년에는 각 지역에 우수한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들어섰다. 그러나 ‘8학군’은 사라졌지만 학군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특목고를 많이 보내는 학교에 대한 선호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오히려 특목고 맞춤형 사교육 시장이 발달하면서 학원가가 잘 형성된 강남과 목동, 중계동 등으로 이동하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세종특별시가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특목고 프리미엄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종시에는 현재 세종국제고와 세종과학예술영재고가 있고 내년에는 세중예술고(가칭)가 개교한다. 세종시내 중학교 출신을 대상으로 하는 관내 지역우수자 전형을 노리고 전입을 하는 이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특목고 황금시대도 최근 들어 저무는 모습이다. 특목고가 대학입시를 위한 예비고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부가 꾸준히 교육제도를 개편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고는 대입 반영 비중이 큰 국어·수학·영어를 전체 수업시수에서 60%에 육박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가르쳤으나 앞으로는 일반고처럼 국·영·수와 한국사를 합쳐 50%를 넘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대학들이 정시보다는 수시 선발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데다 현재 정부가 논의 중인 수능 절대평가제가 도입되면 우수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목고는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교육 환경 변화로 특목고의 인기가 예년같이 않자 대구 경신고는 지난 7월 자사고 폐지를 신청, 일반고로 전환했다. 경신고는 수능 만점자가 4명이나 나온 대구의 대표 명문고다. 경신고의 자사고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경신고로 배정받기 위한 학군 수요가 쏠리면서 수성구 범어동 일대 아파트값은 한달 새 3000만~1억원 정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