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윤정 기자
2015.03.24 06:2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대한민국 연극의 산실인 소극장들이 줄줄이 폐관을 예고하면서 ‘소극장 고사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소극장인 삼일로창고극장이 오랜 경영난에 폐업을 선언했고, 대학로극장도 28년 만에 폐관 위기를 맞았다. 최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선 200여명의 연극인이 “소극장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상여를 메고 행진을 펼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들은 치솟는 임대료에 길거리에 내몰리게 됐다며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는 소극장을 살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대학로 소극장의 위기론은 이미 몇년 전부터 제기됐다. 2013년 학전그린소극장이 개관 20여년만에 폐관했고 상상아트홀, 김동수 플레이하우스 등 수십년을 지켜온 소극장들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배우 김갑수가 운영하던 배우세상소극장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2012년 폐관 후 새 주인을 맞았고 정보소극장 역시 같은 해 운영주가 바뀌었다. 이외에도 꿈꾸는공작소를 비롯해 곧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소극장만도 30~4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서울시가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한 것이 소극장에겐 화근이었다. 10년 전 50여개였던 공연장이 지난해까지 140여개로 급증하면서 무한경쟁이 벌어졌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과 상업시설까지 대거 들어서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타마케팅을 내세운 대형 뮤지컬·연극에 관객마저 빼앗기면서 소극장과 소극장 공연은 제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대형극장과 화려한 공연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민간 소극장 지원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연극인의 대관료를 80%까지 보전하는 사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이 같은 혜택이 소극장에까지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단단한 공연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소극장이 갖는 ‘창작스튜디오’의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배우들의 땀냄새와 숨소리를 코앞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묘미는 결코 대극장이 대신할 수 없다. 민간 소극장의 역사와 가치를 지키려는 지원과 정책만이 예술을 향한 이 가장 원초적인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