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은행]고참직원 많은 '항아리형' 조직…인건비 느는데 생산성 뒷걸음
by김동욱 기자
2015.02.24 05:00:00
점포 고객 점점 줄어 남는 인력 생기는 구조
직원 1인당 생산성 4년만에 40% 급감
[이데일리 김동욱 김경은 기자] 지난 2010년 한 시중은행에 입사한 조모(32) 씨는 지난해 대리로 승진했지만 아직까지 팀 내에선 막내다. 조 씨가 일하는 지점에선 대리직급이 조 씨를 포함해 2명에 불과하지만 나머지는 고참급인 과장, 차장, 부장들이 차지하고 여기에 지점장을 포함한 관리자급만 3명이다. 전체 8명 중 6명이 조 씨에겐 상사가 되는 셈이다. 이 지점 관계자는 “점포를 찾는 고객은 점점 줄고 있는데 고참 인력만 많다 보니 아무래도 유휴 인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점포가 줄면서 지점장 자리도 감소하다 보니 요즘은 빠른 승진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인력 고령화 현상은 저성장·저금리의 장기화로 가뜩이나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은행권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당장 정년이 2년 연장되는 내년부터 문제다. 은행들로선 늘어나는 비용을 줄이려면 신규 채용을 그만큼 줄일 수밖에 없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인력 고령화로 인건비는 급증하는 반면 직원당 생산성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시중은행 대부분은 능력과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다. 은행 정직원 2명 중 1명이 과장급 고참 직원이 포진해 있는 은행의 인력 구조상 인건비 상승 폭이 매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최근엔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거래 급증으로 점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여서 은행마다 심각한 인사 적체를 빚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마다 고급 인력을 사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 부행장은 “은행의 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인력 구조는 고참급이 많아 인건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면 급여체계 개편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고참급의 인력 편중이 심한 데다 점포 활용도가 낮아지면서 고급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결과적으로 투입되는 비용은 많은데 그만큼 생산성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신한·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6곳의 최근 4년(2010~2014년)간 인건비(급여+퇴직금) 현황을 살펴보면 모두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한은행은 이 기간 1조 14억원에서 1조 7349억원으로 73.2%(7335억원) 급증,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국민은행도 같은 기간 1조5920억원에서 2조 1500억원으로 35.1%(5580억원) 증가했다. 이들 은행은 과·차장 이상의 책임자급 비율이 각각 53%와 57%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원수가 많은 전형적인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띄고 있다.
반면 직원 1인당 생산성은 크게 뒷걸음질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거둬들인 순이익은 6조 2000억원 수준. 이를 전체 직원수(11만 8105명)로 나눈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525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만 해도 8400만원 수준이었지만 4년 만에 생산성이 40% 가까이 줄었다. 특히 외환은행의 경우 이 기간 생산성이 1억4573만원에서 4988만원으로 급감,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였다. 시중은행 6곳 중 책임자급 비중이 72%로 고참급 인력 편중이 가장 심한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만 해도 은행들은 신입 행원 채용에 적극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은행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데다 매년 인건비 부담이 늘다 보니 신규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신한·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농협·한국씨티·한국SC은행·수협 등 시중은행 10곳의 최근 3년(2012~2014년)간 신규 대졸 행원 채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들 은행들은 3년 전인 2012년만 해도 2985명을 뽑았지만 2014년에는 1763명에 그쳐 40%(1222명)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면 나가는 인원이 줄어 그만큼 새로 신입을 뽑을 여력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지금의 인력 구조 개편 없이는 문제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걸 직원들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면 단기적으로 비용은 아낄 수 있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젊은 피가 제때 수혈되지 않아 조직에 활력이 떨어지는 등 생산성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