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냐, 실현 가능성이냐"…'딜레마'에 빠진 김영란법

by정다슬 기자
2014.11.26 06:01:00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공직자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제정안이 딜레마에 빠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4일 당정협의에서 김영란법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검토보고서를 제출하면서다. ‘후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법안을 사문화(死文化)시키지 않기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라는 반응도 있다.

김영란법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의 하나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준말)가 지목되면서다. 여야 모두 “김영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고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매서웠던 것과는 반대로 실질적인 법 논의과정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김영란법 ‘원안’이 너무 포괄적이고 강력한 법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행위까지 부정청탁 행위로 볼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민법을 인용한 가족 범위는 너무 넓어 사실상 공직자 개인의 통제권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는 154만명에 이르고 이들 가족을 3인만으로 계산해도 법률 적용 대상자가 462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5월 공립학교 교사, 공공언론과 형평성을 맞추겠다며 사립학교 교사와 전 언론사로 적용대상을 확대하면서 간접대상자는 적게는 560만명, 많게는 1786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권익위는 국회에 제출한 ‘부정청탁금지법 주요쟁점별 검토방향’ 보고서에서 ‘부정청탁’의 개념 중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부분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공정하고 청렴하게’라는 부분이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적용이나 판단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법안 자체의 논리적 허점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에 대해 두 가지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 번째는 현행법 상 위법되는 행위는 모두 부정한 청탁으로 취급돼 헌법 26조가 정한 ‘청원의 권리’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현행법상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는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 달라’고 금융당국에 민원을 넣는 행위 등이 ‘부정청탁’에 해당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째는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자의 가족들은 관련 업종에 채용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이는 헌법 15조 ‘직업선택의 자유’를 위반한다. 적용 범위 역시 포괄적이어서 우리나라 모든 정부부처의 컨트롤타워인 “국무총리의 자녀는 우리나라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냐”는 질문에 “안 된다”는 권익위의 대답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열린 공청회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되면서 국회는 권익위에 지적사항을 반영한 수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전날 보고서는 이를 반영,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민원을 전면 허용하고, 법령·기준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민원은 설사 법령에 위반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허용했다. 또 특정업무에 한해서만 이해충돌방지법의 적용을 받게 하고 공개경쟁 채용절차는 공직자의 부당한 영향이 개입될 소지가 낮은 점을 고려해 예외로 뒀다.

다만, 예외규정이 많아지면서 법망을 회피할 가능성 역시 높아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검토보고서는 부정청탁을 받으면 반드시 신고해야 했던 조항을 ‘임의신고’로 바꿨다. 공직자 가족의 고유한 사회적·경제적 관계 등을 통해서 받는 금품 등을 허용하면서 공직자의 가족이 부정청탁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역시 어려워졌다.

이 같은 검토보고서는 26일 19대 후반기 국회 첫 번째 법안소위에서 관련 법안들과 함께 검토될 예정이다. 당정협의에서는 권익위의 검토안에 대해 참석한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들이 상당수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실현 가능성 있게 법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한 거 아니냐. 범위가 축소된 건 사실이지만 이것 가지고 ‘후퇴’라고 말하면 법안 자체를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