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건보료..누수 막자니 의·약사 반발
by장종원 기자
2013.08.14 07:00:00
작년 건강보험 무자격진료 52만건..100억 누수
병·의원 환자 본인확인 의무화법 논란 가중
"병·의원의 기본 윤리 수칙" "환자 책임 떠넘기나"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A(33)씨는 지난해 1월부터 약 9개월간 경북 포항 등지에서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진료를 받은 혐의로 올해 초 경찰에 입건됐다. 병원 접수대에서 우연히 알게 된 B(49)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모두 151회에 걸쳐 245만원 상당의 의료혜택을 받은 혐의다. A씨와 B씨의 나이 차이가 16살이나 났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건강보험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때문이다.
느슨한 본인확인 절차를 악용, 타인 명의로 진료를 받는 불법진료 행위 적발건수가 지난해만 50만건이 넘었다. 이같은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차단하기 위해 병·의원, 약국이 환자의 본인확인을 책임지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처벌 조항을 담고 있어 의·약사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최동익 민주통합당 의원은 요양기관의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내놨다. 위반한 기관에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 건강보험 증대여, 도용, 자격상실 후 부정수급, 급여정지 기간 중 부당수급 현황(단위 : 명, 건, 백만원) |
|
13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증 대여나 도용, 자격 상실 후 부정수급 등의 건강보험 무자격자 진료로 적발된 사람은 지난해 13만명(52만건)에 이르고, 이로 인해 새나간 건강보험 재정은 110억원이나 된다. 2009년 이후 4년간 누적금액은 250억원에 육박한다. 특히 조사를 강화할수록 적발건수가 늘어나는 구조여서 적발되지 않은 불법환자 규모는 추산조차 어렵다.
최 의원은 “건강보험 도용은 환자의 병력이 명의 도용자의 기록과 혼재돼 심각한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데다 적발 시 민간보험 가입 거부, 취업 거절 등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며 “환자를 첫 대면하는 병·의원, 약국 등에서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면 건강보험증 불법 도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시민단체 등에서도 병·의원의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회보험개혁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의료 종사자의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진료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본인 확인은 당연한 윤리 수칙”이라고 강조했다.
법안이 발의되자 의사협회·병원협회·약사회 등 의료단체는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 부정 수급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병·의원에 책임을 지우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무자격자의 진료는 환자의 책임이며, 이를 관리하는 것도 건강보험공단의 고유 업무라고 주장한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전국민 건강보험시대에 의료기관에게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며 “불법 수급의 원인은 환자에게 있는 것인데, 의료기관에 책임과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만·독일·프랑스·벨기에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병·의원의 건강보험증과 신분증을 확인토록 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무자격자 부당진료는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