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한국의 ‘큰손’을 잡아라.” 외국 부동산 업체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재건축 규제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중과(重課)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부동(浮動)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지난 5월 말 정부가 100만달러(송금액 기준) 한도 내에서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을 자유화하면서 외국 부동산 업체들이 한국에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는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 홀에서 열리는 ‘2006 서울 국제부동산 박람회’(부동산경제TV·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주최)가 그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호텔업체인 라퀸타(La Quinta)그룹·하얏트(Hyatt)그룹, 미국에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는 건설사인 랑코(Lanco), 부동산종합컨설팅 회사인 뉴스타그룹이 새로운 부동산 투자 상품을 들고 박람회에 참가한다.
이들은 ‘EB-5 프로그램’을 들고 한국의 투자자를 끌어들인다는 계획. 이는 미국에 투자를 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 업체에 100만달러를 투자하면 미국 정부가 90일 이내에 투자자에게 임시영주권을 발급해준다. 그 뒤 미국 업체가 이를 통해 자국인 10명을 고용하면 2년 안에 투자자에게 정식으로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다.
투자 방식은 직접 미국의 부동산을 사들이는 기존의 방법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하얏트그룹이 미국에 짓는 호텔에 투자, 그 사업에 대한 일정 지분을 갖는 방식이다. 이후 사업이 진행되면 호텔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배당을 받게 된다. 투자에 따른 영주권은 일종의 덤인 셈이다.
외국 건설사나 호텔업체가 한국에서 이 같은 간접투자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 국제부동산 박람회 조직위의 송동원 부위원장은 “이번에 참여하는 미국업체는 상장사이거나 어느 정도 공신력을 갖추고 있는 업체”라고 말했다.
하얏트그룹은 이번 박람회에서 미국 뉴욕에 개발을 추진 중인 5개 호텔을 투자 상품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랑코는 시애틀 해변에 위치한 웨스트포트에 골프장·콘도·쇼핑몰을 짓는 사업(사업비 2억8000만달러)에 참여할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외국 업체가 한국에 눈길을 쏟기 시작한 것은 해외부동산 투자 열기 탓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이 허용된 이후 2개월간 해외 부동산 취득(신고 기준)은 288건에 1억865만달러(약 1043억원)에 달했다.
1월 487만달러(13건)에 불과했던 해외부동산 투자는 지난 3월 거주용 주택에 대한 투자 한도가 폐지되면서 월 평균 2200만달러 수준으로 급증하더니, 6월과 7월엔 월 5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빗장을 풀면서 뭉칫돈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건설사나 해외부동산 정보 업체도 국내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끌어내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동 두바이에서 주상복합·오피스타운 개발을 추진 중인 반도건설·성원건설은 한국에서 일부 물량을 분양할 계획이다.
반도건설은 두바이에 20~80평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 건물(55층) 2개 동을 지을 예정인데, 이 중 일부를 오는 10~11월쯤 서울에서 분양할 계획이다. 모델하우스는 서울 강남에 짓기로 했다. 반도건설 기획팀 김봉남 차장은 “모델하우스를 열지도 않았는데 국내 투자가들의 관심이 높아 문의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고 말했다. 두바이에서 지하 2층~지상 3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오피스·백화점을 분양할 계획인 성원건설도 강남에 모델하우스를 지어 국내 투자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해외부동산 정보 제공업체인 루티즈코리아는 해외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잇달아 만들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이후 한 달 만에 미국 중서부 텍사스 지역 아파트에 투자할 3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 데 이어, 최근엔 30억원 규모의 ‘2호 펀드’ 투자자를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루티즈코리아 김경현 팀장은 “뉴욕이나 LA 지역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돼 있는 텍사스 지역 아파트를 사들여 임대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라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펀드에는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2억50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는 몇 가지 매력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점이 국내에 집을 한 채 가진 투자자가 해외에 몇 채의 집을 사도 다주택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해외에 여러 채의 집을 사도 국내에서 살 때와 달리 종부세나 양도세 중과(重課)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내년부터 양도세가 중과(세율 50%)되는 1가구2주택자들이 집 한 채를 팔고 해외 부동산을 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주택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기가 아니어서 리스크(위험)가 크다는 것이다. 집값이 수년간 급등했던 미국의 경우 1분기 250여지역 중 사우스다코타 등 53개 지역의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 추세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가격은 하락한다. 특히 미국 주택 가격은 금리에 민감한 편이다. 일본의 투자자들도 1991년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에 미국 부동산에 대거 투자했다가 미국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낭패를 당했던 경우가 많았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외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에 현혹돼 무턱대고 투자했다가는 돈을 날릴 수도 있다”며 “실수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살면서 투자용으로 해외 부동산을 사들일 경우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시세 파악도 신속하게 하기 힘들다. 환율도 위험 요소다. 부동산 값이 올랐다 해도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손으로 다 까먹을 수 있다.
그래도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한다면 어떤 점을 염두에 둬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가격이 급등한 지역은 피하라고 말한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지역에 투자했다가는 상투를 잡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1997년에서 2005년까지 9년 동안 집값 상승률은 아일랜드(212%)·영국(167%)·스페인(156%) 등이 높았다.
또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곳은 일단 조심해야 한다. “1~2년 묻어두면 땅값이 2배 이상 뛸 것”이란 식으로 투자를 권하는 사설 펀드나 업체는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잘 모르는 개인의 소개를 통해 투자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김선덕 소장은 “믿을 만한 컨설팅업체를 통해 투자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