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 잭팟' K원전…마지막 고비는 '美 지재권 소송'

by김형욱 기자
2024.07.23 05:03:00

美 웨스팅하우스 소송전으로 발목
로열티 지급 등 韓 협상카드 ''주목''
저가수주 우려…사업성 확보 과제도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비롯한 ‘팀코리아’가 24조원 규모 체코 원자력발전소(원전) 2기 프로젝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원전업계의 시선은 이제 내년 3월로 예정된 이곳 본계약의 차질없는 체결과 함께 다음 원전 사업 추진 국가를 향하고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체코 정부는 이곳에 원전 2기를 신설키로 하고, 지난 17일(현지시간) 사업자 본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팀 코리아’를 선정했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최종 경쟁자이던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유리하리란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체코 원전사업 수주의 9부 능선을 넘으며, K원전의 실력 그 자체는 입증했다. 현실적으로 원전 수출이 가능한 5개국(러시아·중국·프랑스·미국·한국)뿐이고, 특히 안보를 이유로 중·러 사업자를 제외할 서방 시장에서만큼은 최소한 한·미·프 3자대결 구도인데, 여기서 경쟁력을 입증한 것이다. 약 300기로 추산되는 세계 신규 원전 건설 시장에서 일정 부문 이상의 지분 확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선 추가로 해소해야 할 과제도 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때부터 이어져 온 미국 경쟁사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IP) 소송은 현재진행형이고, 국내외 일각에서의 사업성 우려도 K원전이 풀어야 할 숙제다.

최우선 선결 과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IP 소송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조기 탈락했으나 한수원의 단독 수출이 불가하다며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형 원자로는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만큼 미국 수출통제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인 수출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미국 법원은 지난해 1심에서 IP 소유 주체가 정부인 만큼 민간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소 제기 주체가 아니라며 수출금지 가처분 소송을 각하했다. 그러나 항소가 진행 중인 만큼 불씨는 여전하다. 체코 현지 일각에서도 내년 초 한수원과의 본계약에 앞선 변수의 하나로 IP 갈등을 꼽는다.

한수원은 한국형 원자로 개발 초기에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ARP1400 등 현 모델은 완전히 독자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전수였던 게 사실이다. 또 원전은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고려된 사업인 만큼 미국과의 소송 자체가 앞으로의 원전 수출에 큰 부담이다. 실제 체코 때와 유사한 조건에서 이뤄진 재작년 폴란드 정부 원전 사업 수주전에선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에 대한 IP 공세와 함께 사업권을 따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이른바 한·미 원전 동맹 문서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체코가 이번에 한수원을 택한 것은 한·미간 소송전이 이번 사업에 큰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 아래 이뤄진 것이다. 또 한·미 양국 정부의 협력 체제 아래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이 건을 막판 조율 중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특히 올 11월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고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큰 만큼 K원전에도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체코와의 본계약뿐 아니라 앞으로의 거의 모든 서방 신규 원전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와 경쟁하는 만큼 이곳과의 IP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미 원전 동맹 체제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체코와의 본계약 때 각종 변수를 충분히 고려해 사업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주요한 과제다. 이번 체코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한수원이 프랑스전력공사(EDF) 대비 60%의 가격에 입찰하며 저가 수주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왔었다. 한수원을 비롯한 팀코리아는 저가 수주 우려를 일축했지만, 15년 전후가 걸리는 원전 사업 특성상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이 UAE에서의 ‘온 타임 온 버짓(예산 내 적기 시공)’ 경험 덕분에 체코 원전 사업을 따냈지만, 국제적으론 영국이나 튀르키예처럼 사업이 지연·좌초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체코와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수출입은행(수은) 등 국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금리 등 대외 변수도 더 신중히 점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수은 등은 UAE 원전 수출 때도 금융지원 역할을 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IP 협상이 UAE 때처럼 일정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체코 원전 사업성 확보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우선협상 주체인 한수원은 수익성 있는 사업 진행을 자신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유럽 원전 규제와 엄격한 노동시장 규정 등 체코 현지 여건과 장기 프로젝트 특성을 모두 고려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상황”이라며 “아직 최종 계약금액을 전망하는 건 어렵지만 예상 사업비가 당초 예상했던 15조원보다 높은 24조원으로 책정된 것은 금융권에서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