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1.19 05:00:00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이 굴기를 넘어 제패의 기세로 달려 나가고 있지만 한국은 크게 뒤처졌다는 사실이 호주의 국책 연구기관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다. 이 연구소가 작성, 발표하는 ‘핵심기술 추적지표’(트래커)를 통해서다. ASPI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 자료의 지난해 9월 기준 업데이트에 따르면 64개 첨단기술의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단 1개 분야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인공지능(AI)·우주항공·배터리 등 53개 분야, 미국은 유전공학·양자컴퓨터 등 11개 분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개 분야에서 세계 5위 안에 들긴 했지만 점유율은 중국과 미국에 현격한 차이로 뒤떨어진다. 배터리의 경우 한국의 점유율은 3.8%로 중국의 65.5%와 미국의 11.9%에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한국의 점유율이 5% 이상 분야는 슈퍼콘덴서(7.3%), 고급무선통신(5.0%) 등 4개뿐이다. 19개 분야에서 5%이상 점유율을 가진 인도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 조사는 기술 연구 실적과 영향력, 연구기관·기업·정부 활동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여서 현 상황뿐 아니라 미래 추세까지 보여준다고 봐야 한다.
충격적인 결과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일부 분야에서나마 한국이 글로벌 기술을 선도한다고 여겨온 자부심을 박살내서다. 첨단기술 분야별 경쟁력에서 중국이 우리가 맹방으로 간주하는 미국까지 압도적 차이로 이미 추월했다는 점도 놀랍다.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패권 경쟁과 공급망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첨단기술 급성장은 우리 경제와 교역 환경에는 물론 지정학적 여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ASPI의 분석이 맞는다면 우리는 초비상상황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ASPI는 국부펀드를 통한 고위험 혁신기술 투자 확대와 민간자본의 벤처 투자를 늘리는 세제 개편 등을 첨단기술 역량 강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대학의 첨단기술 연구 활성화 및 우방국과의 기술협력 제고 등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첨단기술은 연구에서부터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리스크가 커서 민간 영역에만 맡겨서는 발전하기 어렵다.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방위적으로 나서야 함을 이번 조사는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