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10.17 05:00:00
중앙·지방정부와 비영리공공기관을 아우른 광의의 정부 부채가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간한 ‘재정점검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지난해 53.8%에서 2028년 57.9%로 3.6%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홍콩(상승폭 3.6%포인트)과 함께 분석 대상 비기축통화국 11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5년 뒤 GDP 대비 비율 전망치(57.9%)는 싱가포르(170.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비기축통화국끼리 비교해본 이번 분석이 눈길을 끄는 것은 비기축통화국이 감당해야 하는 재정 운영상의 제약 때문이다. 비기축통화국은 기축통화국에 비해 국공채에 대한 시장 수요가 적어 증가하는 재정 적자를 국공채 발행으로 메우기가 쉽지 않다. 그런 만큼 평소에 재정 건전성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2028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전망치가 미국은 137.5%, 영국은 108.2%, 일본은 252.8% 등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지만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국이어서 우리와 입장이 다르다.
정부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특히 우리 정부가 중앙정부에 국한해 집계하는 국가채무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600조원대에서 1000조원대로 60% 이상 급증하면서 경고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은 국가채무가 더 불어나 1100조원대에 이른다. 정부 부채가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정부가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재정준칙 도입 추진에 나섰다. 이를 통해 연간 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정부 부채에도 한도를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법안을 새로 가다듬어 지난해 가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 뒤로 1년이 넘도록 여야는 이렇다 할 심의도 하지 않은 채 차일피일해 왔다. 해외 사례를 파악한다며 의원들이 유럽 출장을 무리해서 다녀오고도 묵묵부답이다. 무책임한 태도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여야는 심의를 서둘러 연내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