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빚투…2차전지 끝나자 로봇·요소수로 쌓인다
by김인경 기자
2023.09.15 06:20:00
신용융자 잔액 20조4594억…올해만 23.86% 늘어
2차전지 붐 불며 ''포모''공포 ↑…빚내서라도 투자나서
로봇·두산로보틱스IPO·요소수로 신용융자 잔고 확대
짧아지는 주기에 반대매매 공포…"4Q까지 테마주 장세"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하반기 주식시장은 ‘테마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코프로(086520)로 시작한 2차전지 붐이 가라앉기 무섭게 새로운 테마주가 나타났다 사라지면서다.
지난달 초전도체에 이어 양자컴퓨터, 맥신 관련주가 급등했다 자취를 감췄고 이달에도 로봇주와 두산로보틱스 기업공개(IPO) 관련 종목, 요소수 종목 등이 테마주로 묶이며 개미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문제는 연이은 테마주 열풍으로 현금 보유가 많지 않은 투자자들이 빚을 내 주식을 사는 ‘빚투’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일(13일) 신용융자 잔액은 20조459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16조5186억원)보다 23.86% 증가한 수치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신용융자가 10조6012억원으로 올해 들어 1조8435억원 늘었고 코스닥의 신용융자는 9조8582억원으로 같은 기간 2조973억원이 증가했다.
올해 주식시장에 2차전지 붐이 일자 금융투자업계에는 빚을 내서라도 2차전지 관련주를 사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신용융자 잔액이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달 17일(20조5572억원) 에코프로(086520)는 전 거래일보다 9만1000원(8.90%) 오르며 111만4000원에 마감했다. 또다른 2차전지주인 에코프로비엠(247540)도 이날 4.78% 올랐고 금양(001570)과 포스코퓨처엠(003670)도 각각 10.60%, 4.52% 급등했다. 2차전지 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뒤늦게 포모(FOMO·자신만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상) 공포에 빠진 투자자가 늘어난데다, 주가가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으로 빚을 내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다.
‘빚투’가 급증해 반대매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단기간에 과도한 투자자 쏠림, 레버리지 증가, 단타 위주 매매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테마주 투자 열기에 편승한 증권사들의 공격적 신용융자 확대는 ‘빚투’를 야기할 수 있다. 경쟁이 심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형 증권사들은 맥신테마주나 2차전지 테마주 등 일부 종목의 신규 신용융자를 중단하며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신용융자 잔액도 지난달 24일 20조197억원으로 내려오며 빚투도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잦아들었던 신용융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2차전지 붐이 끝나기 무섭게 증권가가 새로운 테마를 만들며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상반기 2차전지 투자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새로운 테마에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9월 새로운 테마로 부각한 주식은 로봇이다. 이에 로봇주, 특히 1주당 주가가 비교적 저렴해 몸집이 가벼운 종목 위주로 신용융자는 쌓이고 있다. 이날 3만8300원으로 거래를 마친 에스피지(058610)의 경우 8월 말 신용융자 잔고는 133만733주였지만 13일엔 151만2564주로 급증했다. 에스피지는 국내 최초 로봇용 정밀감속기를 양산하고 있는 곳이다. 뉴로메카(348340) 역시 같은 기간 신용융자 잔고가 45만167주에서 59만8252주로 32.9% 늘었다.
두산로보틱스의 상장을 앞두고 지주사인 두산(000150)의 신용융자 잔고 역시 급증하고 있다. 두산의 신용융자 잔고는 8월 말 26만5082주였지만 13일엔 39만5152주로 49.1% 늘어났다.
최근엔 요소수 관련 종목도 빚투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내수 안정을 위해 자국 내 비료업체에 요소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는 보도 탓이다. 이에 요소수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반사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 신용융자 잔액도 쌓이고 있다.남해화학(025860)의 신용융자 잔고는 92만2999주에서 118만5494주로 늘었다.
문제는 빚을 내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급락했을 때다. 증권사들은 주가 하락으로 신용거래 계좌 평가금액이 일정 담보유지비율 밑으로 떨어지면 주식을 강제로 팔아 빚을 회수하는 ‘반대매매’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당장 반대매매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반대매매가 이뤄질 수 있는 위탁매매 미수금도 13일 기준 5278억원으로, 지난달 말(4911억원)보다 증가했다. 위탁매매 미수금은 투자자가 주식 결제 대금이 부족할 때 증권사가 사흘간 빌려주는 단기 융자다. 이 가운데 테마주의 주기마저 짧아지며 변동성이 확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테마주 위주의 증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증시가 박스권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개미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은 높아져 빚투가 쉽게 진정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고금리·고유가·강달러 속에 지수 상승은 여전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의 수급 공백을 개인이 채우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4분기 중순까지 테마주 성격의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