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덩치에 민첩함까지…EV9이 보여준 플래그십의 자격[시승기]

by손의연 기자
2023.06.22 06:11:11

국내 전기차 시장 첫 3열 SUV
스위블 시트 등 조작 간편해..활용성 좋아
주행성능, 덩치 생각 못할 정도로 민첩
정숙성·승차감 뛰어나..패밀리 저격한 車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기아(000270)가 선보인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은 올해 가장 주목받는 신차 중 하나다. 기아는 지난 2021년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떼며 사명을 변경한 이후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을 꾀해왔다. EV9은 기아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플래그십 모델인 데 의미가 크다. EV9이 큰 관심을 받는 만큼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기아 EV9 (사진=기아)
지난 13일 미디어 시승회에서 EV9을 타고 경기도 하남시에서 충남 아산시를 거쳐 충남 부여군까지 총 210km를 주행했다. 기아는 EV9 트림을 에어와 어스 두 가지로 운영하는데, 이날 시승한 차량은 에어보다 상위 트림인 ‘EV9 4WD 어스 풀옵션’이다.

아직까지 전기차 시장에 패밀리카로 흡족한 대형 SUV가 많지 않다. EV9은 국내 전기차 시장에 첫 출시된 3열 SUV다. 기아는 패밀리 전기 SUV 시장을 겨냥해 넓은 실내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장치들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EV9 운전석에 오르니 우선 개방감이 돋보였다. EV9에 최초로 적용된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운전석을 더 넓어보이게 하는 효과를 줬다.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12.3인치의 디지털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스플레이, 5인치 공조 디스플레이를 한데 묶어 효율성도 높였다. 다만 스티어링휠을 잡았을 때 운전자의 오른손에 내비게이션 화면이 일부 가려 불편함이 있었다.

센터 콘솔 아래는 가방이나 간단한 짐을 보관하는 수납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 또 컵홀더와 수납함 등이 운전자의 손이 편하게 닿을 수 있게 설계된 느낌을 받았다.

기아 EV9 실내 2열 모습 (사진=손의연 기자)
EV9의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일반적으로 1억원에 육박하는 차량에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보통 럭셔리 브랜드들은 시트 소재나 차문 안쪽, 크래시패드 상단, 필러나 천장 마감재에 고급 가죽을 써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린다. 하지만 EV9에선 기존의 화려한 소재나 조형을 일부러 배제한 느낌이다.

실제 EV9엔 바이오 폴리우레탄을 활용한 시트, 업사이클링(재사용) 어망과 플라스틱을 각각 활용한 바닥 매트와 가니시(장식) 등 지속가능한 10가지 필수 소재가 적용됐다. 차량 1대 당 약 70개 이상의 페트병을 활용한 친환경 소재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기아는 심플함과 모던함을 중심으로 브랜드만의 차별화한 고급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로 전환하면서 이에 맞게 브랜드의 ‘럭셔리함’을 다시 정의했다고 풀이된다.

차량의 럭셔리함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장치를 적용했다. 에르고 모션 시트와 스위블(회전) 시트 등이 예다.



에르고 모션 시트는 주행 중 마사지를 제공하는 기능으로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에도 적용된 바 있다. 타격 마사지를 제공하는 2열 릴렉션 시트는 EV9에 최초로 적용됐다.

스위블 시트 작동 방식 (사진=손의연 기자)
스위블 시트는 의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기능이다. 실제 어린이를 위한 카시트를 설치해야 하는 가정에서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차크닉과 차박 등 야외활동을 할 경우 활용도가 높을 듯했다. 전동식은 아니지만, 시트 앞에 붙은 버튼식 레버를 살짝 당긴 후 시트를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는 간단한 조작 방식이다. 힘이 많이 들지 않아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조작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패밀리카를 지향하는 대형 SUV지만 주행성능이 민첩하고 날렵해 놀라웠다. EV9 시승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3열 SUV라는 덩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감속 반응이 빠르고 부드러웠다. 고속에서도 안정감이 뛰어나 속도가 체감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숙성 또한 거의 실내라고 느껴질 정도로 훌륭했다. 이는 기아의 대표 패밀리카인 카니발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아 관계자는 “EV9과 카니발 모두 패밀리를 지향하는 고객군이 타깃이지만 EV9은 운전자 지향의 다양한 기능이 많이 탑재돼 차이가 있다”며 “양 모델 간 크게 수요 간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기아가 이번 시승회에서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승차감’이다. 기아는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식 서스펜션을 빼고, 맥 멀티 서스펜션과 셀프 레벨라이저라는 신기술을 EV9에 적용했다.

전체적으로 차량의 크기와 무게를 고려했을 때 흘러가는 물에 떠 있는 듯한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감이 인상적이었다. 기아가 대형 전기 SUV를 내놓으면서 승차감이라는 과제를 충분히 잘 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생제동 정도를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어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거북할 수 있는 회생제동 느낌을 줄일 수 있었다.

기아 EV9 (사진=손의연 기자)
레벨 3수준의 고속도로 자율주행(HDP)는 하반기 나올 GT라인부터 적용된다. 이날 HDA2(고속도로 주행보조2)기능을 체험했다.

코너링과 차선 변경을 돕는 수준으로 운전자를 지원하는데, 장거리 운전에도 피로를 훨씬 덜어줬다. GT라인이 탑재할 HDP 기능에도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1억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기아는 플래그십 대형 전기 SUV인 만큼 첨단 기술과 기능을 탑재해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가 기아라는 브랜드에 기대하는 접근성과 갭이 있어 보인다. 차라리 기능을 좀 빼고 가격을 낮추면 좋겠다는 의견도 보이는 상황이다.

EV9은 기아가 처음으로 커넥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라이팅 패턴, 스트리밍 플러스 등 기능을 커넥트 스토어 구매를 통해 제공한다. 이러한 구독 서비스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소비자 불만이 보인다. 기아가 향후 고객에게 타 브랜드와 달리 더 나은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만큼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주목할 만하다.

EV9 가격은 7337만~8169만원(개소세 5% 기준, 옵션 제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