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리튬 등 광물전쟁 가속화…공급망 확보 실패 땐 韓경제 직격타
by하지나 기자
2023.02.24 06:00:00
배터리 핵심광물 수산화리튬, 작년 中서 87.8% 수입
中 영향 따라 가격 변동성도 커…리튬 581.50위안까지 상승
美 범정부TF 꾸리고, 日 5000억엔 기금 마련하는데
韓 ''공급망 기본법'' 계류 중…의존도 낮추는 기술개발 지원도 필요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리튬 매장량 전 세계 10위인 멕시코가 리튬을 국유재산화하는 법안을 정식으로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해 리튬 생산 국영기업 리티오멕스(LitioMx)를 설립했으며 최근 에너지부에 모든 리튬 매장량의 권리를 양도했다.
필리핀 정부는 니켈 수출에 최대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라리오하 주지사는 리튬을 전략광물로 지정하고 기 승인된 모든 탐사 허가를 중단하는 법안을 주지사령으로 공포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광물전쟁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핵심 광물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기업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자원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보유 자원이 없는데다 반도체·배터리 등을 핵심 전략산업으로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공급망 확보에 실패할 경우 국가 경제에 직격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산화리튬 수입 36억6074만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이 32억1616만달러로 87.8%에 달했다. 2021년 83.6%보다 4.2%포인트 늘었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업계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로 쓰인다. 호주, 칠레, 중국이 전체 리튬 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지만 65%가 중국으로 공급 후 고순도리튬으로 제련돼 주요국에 공급되고 있다.
리튬과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NCM전구체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양극재 원가에서 전구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지난해 양극재 무역 수지 흑자규모가 81억달러였는데 전구체가 39억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양극재 수출이 늘수록 전구체의 중국 수입도 늘어나는 셈이다. 이밖에 흑연, 코발트 중국 의존도도 90%대에 달한다.
중국에 의존적인 공급선을 다변화하지 않을 경우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발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가뭄과 정전으로 리튬 채굴과 정제 공급망의 20% 이상을 담당하는 쓰촨성 공장이 폐쇄되면서 리튬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리튬 가격은 킬로그램(kg)당 383.50위안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11일 최고점(581.50위안)을 기록한 뒤 현재까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3년 전(39위안)과 비교하면 여전히 10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니켈 역시 세계 3위 생산국인 러시아의 공급 불안 등으로 가격이 급등한 상태다. 21일 기준 니켈 가격은 톤(t)당 2만6600달러이다.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해 3월에는 4만2995달러까지 치솟았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희토류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희토류는 약간만 첨가해도 전기·자기·광학적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 첨단산업의 ‘조미료’, ‘비타민’으로 불리며 스마트폰부터 전기차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17가지 원소 중 하나인 네오디뮴의 경우 지난해 t당 9만달러까지 하락했다가 올 들어 11만달러대를 회복했다. 희토류는 중국이 전세계 공급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원자재에 대한 환경 기준이 강화되면서 중국산 원자재가 배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 갈등 역시 서둘러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이유로 지적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광물의 경우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일정 비율 이상을 공급받아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25년부터는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조달한 핵심광물이 포함된 경우 아예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된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장은 “코로나1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출렁거렸다”면서 “과거에는 원자재 수입선 다변화를 효율성 측면에서 봤다면 앞으로는 산업에 미치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에서 자원의 무기화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리스크가 커서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자원 탐사 분야에 대해서도 이제는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 기본법)’이 계류 중이다. 대통령 소속 공급망 안정화 위원회 설치, 경제안보 품목 지정 및 지원, 공급망안정화기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미 해외 경쟁국가들은 정부 주도의 공급망 관리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미국은 백악관과 국가경제위원회 주도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해 8월부터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시행해 11개 특정중요물자에 대해 해외의존도를 완화하면서 5000억엔 규모의 기금도 신설했다. 특히 일본은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독립된 위원회로 설치해 운영 중이다.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으로 자원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JOGMEC는 출자·채무보증을 통해 민간 기업의 해외자원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공급망 다변화 자체가 어려운 핵심 원자재도 있다. 리튬의 경우 부존량이 0.006%에 불과하며, 코발트의 경우 채산성이 낮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부분 생산·공급되고 있다. 이 경우 결국 기술 개발을 통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2010년 JOGMEC가 종합상사인 소지쓰와 공동으로 2억5000만 달러를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에 출자하고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 희토류 사용량을 반으로 줄인 자석 개발에 성공하면서 대중국 희토류 의존도를 2008년 90.6%에서 2020년 57.5%까지 줄였다.
조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급망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보유한 진입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공급망의 근본적 체질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