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의 이게머니]유가 올리는 세 가지…"내년 200달러 베팅도 나왔다"
by최정희 기자
2021.10.20 06:37:00
①공급 부족 부추기는 탄소중립 정책
②유가 100달러 전망 즐기는 산유국들
③공급망 병목에 셰일 시추 비용 올라
"유가 급등에 경제 둔화 vs 견딜 만해"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국제유가가 연말까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브렌트유가 연말까지 각각 90달러, 84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내년 말엔 브렌트유가 200달러로 오른다`는데 베팅한 옵션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바클레이즈와 모건스탠리는 옵션 베팅 레벨보다는 낮지만 내년에도 브렌트유가 80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급등의 원인으론 크게 △탄소중립 정책 과도기로 인한 수급 부족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제한적 증산 △공급망 병목에 따른 셰일업체 시추 비용 상승 등 세 가지가 거론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미앵 꾸발랭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석유시장이 수십 년 만에 공급 부족 상태에 있다”며 “수요가 증가하는 동안 공급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적어도 향후 1년 간은 유가가 높은 상승세를 보일 것임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유가 상승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정책이 전환되는 과도기에서 공급 부족현상이 가시화됐단 평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연말까지 일일 약 70만배럴의 공급 부족을 전망했다.
IEA에 따르면 작년 기준 화석 연료의 시장 규모가 1조2500억달러인데 비해 신재생 등 청정에너지 규모는 1230억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탄소저감 정책에 따라 화석연료 투자는 줄었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수요 대비 턱 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IEA는 올해 전 세계 석유 및 가스 투자가 팬데믹 이전 수준 대비 약 26% 감소한 35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는 주법에 따라 2045년까지 전력망을 탈(脫)탄소화하기 위해 화석 연료 발전소를 폐쇄하는 중이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작년 알래스카의 원유 생산량은 일 평균 44만8000배럴로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화석연료 투자가 줄어든 만큼 신재생에너지 투자, 생산이 증가하진 않았다. WSJ에 따르면 IEA는 “전 세계 에너지 수요와 기후변화 정책 목표를 충족시키려면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올해 약 1조1000억달러에서 2030년까지 연간 3조4000억달러로 증가시켜야 한다”며 “풍력 터빈, 태양열, 배터리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경제 정상화에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가 올 들어 두 배 가량 상승, 연료비 증가에 천연가스 대신 석탄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점이 수요를 촉진시켰다. IEA는 올 일일 석유 수요가 550만배럴로 종전보다 17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도 21만배럴 증가한 330만배럴로 전망했다.
공급 부족에 유가가 올 들어 70% 가량 급등하자 미국 등에선 산유국을 향해 증산을 요구하고 있지만 OPEC플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8월부터 매달 40만배럴씩 증산키로 한 계획을 유지키로 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장관은 최근 “11월에도 하루 40만배럴을 더 증산할 계획”이라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원한다”고 밝혔다.
작년 마이너스 유가 충격에서 벗어나 공급 부족에 유가가 오르자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를 챙기려 현재의 유가 상승을 즐기고 있단 평가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유가가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라크측에선 120달러를 희망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산유국이 추가 증산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로 수요 둔화를 꼽는다. OPEC플러스는 올해 석유 수요 전망치를 596만배럴에서 582만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엔 420만배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OPEC플러스가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면 미국 셰일업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원유 생산을 늘린다면 유가가 안정될 테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최대 유전 지대 텍사스 퍼미안 분지에서 일반 유정 시추 비용은 내년 배럴당 50~55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노르웨이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셰일 연구 책임자 아르템 아브라모프는 “석유산업 비용이 내년 10~15%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추에 사용되는 일부 특수 고무, 플라스틱, 철강 등의 품목 등이 부족해 작업이 연기된다든지, 인력 유출에 따른 노동력 부족, 임금 상승 등이 나타나고 있다.
비용 상승에도 현재의 유가는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올해 새로운 유정 및 가스정 시추 굴착 수는 533개로 작년대비 두 배 정도 증가했다. 그럼에도 생산량은 일일 1300만배럴로 2019년 말보다 적은 상태다. 탄소저감 정책, 작년의 마이너스 유가 충격, 코로나19 지속 등으로 셰일업계는 추가 투자보다는 현금 회수를 원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가 상승에 따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경기가 둔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반면 경기는 충분히 유가 상승을 견딜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IEA는 “에너지 위기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세계 경제 성장률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JP모건의 마르코 콜라노비치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에너지 가격이 경제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며 “2010~2015년에도 유가가 평균 100달러 이상을 기록했지만 경제와 소비는 잘 작동했던 만큼 내년에 유가가 130달러 또는 150달러까지 간다고 해도 경제와 주식시장은 잘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