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작심한듯 슈퍼 비둘기 모드…'파월 풋' 또 증시 살릴까

by김정남 기자
2021.02.25 00:00:00

초반부터 전방위 폭락장 조짐 보인 증시
파월 ''슈퍼 비둘기'' 모드에 시장 환호성
인플레 가능성 일축…완화책 유지 천명
''파월 풋''에 또 기대는 위태위태한 증시
"임시방편 조치…조정장 불가피" 관측도
연준 돈풀기, 증시 버블 더 키울까 촉각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3일 오전(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야후파이낸스 캡처)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23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문을 열자마자 패닉에 빠졌다. 전날 조정 움직임을 보이던 빅테크주들이 개정과 동시에 폭락한 탓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장중 1만3033.98까지 고꾸라졌다. 올해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한 수준이다. 테슬라는 한때 13.37% 미끄러졌다. 우량주로 구성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까지 1.15% 빠지며 증시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상황이 바뀐 건 오전 10시부터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소방수’로 등판했다. 최근 인플레이션 공포에 증시 폭락 우려가 커지며 상원에 출석한 파월 의장의 입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는데, 그는 작심한듯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발언을 쏟아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논쟁을 촉발한 바이든표 메가톤급 부양책을 두고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단호하게 잘랐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물가 하락 압력이 강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흐름이 급등하는 쪽으로 단박에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물가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해도 연준은 대처 수단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상보다 빠르게 급등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를 두고서는 “경기 회복 기대감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경제가 살아나는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별다른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10년물 금리는 장 초반 1.389%까지 올랐지만, 그의 발언이 나온 이후 1.342%까지 하락했다. 장중에는 1.35~1.36%를 유지했다.

파월 의장은 아울러 “고용과 물가 모두 연준 목표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실질적으로 회복하는 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추후 경제 전망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동시장 여건이 완전고용에 도달하고 인플레이션이 일정 기간 2%를 완만하게 초과하는 궤도에 오를 때까지 현재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제로 수준(0.00~0.25%)의 정책금리와 매월 최소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양적완화)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요즘 증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플레이션 공포 △국채금리 상승 △연준 긴축 전환 가능성 등을 두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증시는 환호했다. 다우 지수는 장중 상승 반전하며 0.05% 오른채 마감했다. 나스닥 지수(-0.50%)는 낙폭을 크게 줄였다. 장 초반 13% 넘게 폭락했던 테슬라는 2.19% 내린채 거래를 마쳤다. 페이스북(2.12%), 아마존(0.43%), 구글(알파벳·0.29%) 등은 상승했다. 빅테크주와 더불어 셰브런(1.28%), 뱅크오브아메리카(BoA·1.05%) 같은 주요 경기민감주 역시 올랐다.



이 때문에 ‘파월 풋(Powell put)’이 또 증시를 떠받쳤다는 얘기가 월가에서 나왔다. 파월 풋은 풋옵션(특정 상품을 특정 시점과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내리면 수익을 내는 파생상품)처럼 하락장에서 파월 의장이 구세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말이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조나단 골룹 주식전략가는 “경기민감주가 증시를 새로운 고점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형 기술주들의 버블 우려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이날 파월 의장의 언급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현재 연준은 역사상 최악인 고용시장을 살리는 동시에 버블 우려가 커지는 자산시장을 안정화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파월 의장이 연일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건 일자리를 살리려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이날 증시 전반에 폭락 조짐이 보였으니, 평소보다 더 강도 높게 비둘기파 면모를 보여야 했다는 게 월가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는 연준 입장에서 자칫 자산시장 버블을 더 키우는 리스크를 안을 수 있다.

램슬리 어드바이저리그룹의 피터 부크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은 고용 회복에 더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 역시 크다”며 “연준이 시장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때문에 파월 의장의 증시 달래기는 임시방편일 뿐 빅테크주를 중심으로 한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다수다. 월가의 한 금융사 인사는 “증시의 급격한 폭락 가능성이 아직은 높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올해 1분기 중으로 단기 하락장은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같은 연준의 변칙적인 공개시장조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가격이 안정적인 단기국채를 팔고 10년물 국채를 집중 매수하면 돈을 더 풀지 않아도 장기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카드는 자칫 실물경제를 더 악화할 수 있는 탓에 나오는 고육지책 아이디어다. 그러나 이 역시 일회성 정책이라는 한계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