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日 접속자 3억명, 코로나가 낳은 신데렐라 '줌'

by김정남 기자
2020.06.04 00:00:00

화상회의 앱 줌, 1분기 매출 169% 폭증
"기업 SW 시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기"
실리콘밸리 변방 스타트업, 천지개벽 성장
줌 이끄는 에릭 위안, 세계적인 갑부 대열
구글·MS·페북 본격 참전…도전 과제 즐비
'줌 폭격' 신조어…보안 논란 종식 장벽도

세계적인 화상회의 플랫폼 줌의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 (사진=AP/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 역사상 이 정도로 위대한 분기는 없었다.”

캐나다 최대 투자은행(IB) RBC캐피털의 알렉스 주킨 소프트웨어 애널리스트가 2일(현지시간) 화상회의 플랫폼 줌의 올해 1분기 실적을 확인한 후 남긴 말이다.

당초 월가가 예상한 줌의 1분기 매출액은 2억270만달러(약 2467억원·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 기준).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예상은 터무니없이 빗나갔다. 줌은 이날 실적 발표를 통해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69% 폭증한 3억2820만달러(약 3995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주당순이익(EPS) 역시 20센트로 예상치(9센트)를 웃돌았다. 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다.

시장의 눈은 주가에 그대로 투영됐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줌의 주가는 실적 발표 직전인 지난 1일 13.75% 급등한 주당 204.15달러로 신고가 마감했다. 투자자들도 줌의 호실적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의미다. 직전 거래일인 지난달 29일에도 9.74% 뛰어올랐다. 그런데 예상보다 줌의 실적은 더 좋았고, 이날 주가는 208.08달러까지 재차 상승했다. 1년 전만 해도 줌의 주가는 주당 70달러대였다.

시가총액도 폭증했다. 지난달 말 500억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이날 현재 586억달러로 늘어나 600억달러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업공개(IPO) 당시 줌의 시가총액은 159억달러였다.

줌의 지위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 중 하나 정도였다.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 사이에서 소규모로 화상회의 앱을 서비스하는 게 주요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천지개벽과 같은 갑작스러운 성공은 어떻게 찾아온 것일까. 에릭 위안(50) 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 업무와 학교 학습 등에 줌 이용 사례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작업이 많아지면서 줌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당시 줌 이용자는 하루 1000만명 안팎이었는데, 올해 4월에는 3억명 가량으로 늘었다. 지난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 쟁쟁한 경쟁사에 밀려 모바일 앱 다운로드 상위권 순위에 명함조차 못 내밀었다가, 지금은 수위를 지키고 있는 게 줌의 달라진 위상을 방증하고 있다. 줌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직원 수 10명 이상인 기업 26만5400곳에서 줌을 이용했고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다른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사이 줌은 여러 스타트업 중 하나에서 IT 시장의 ‘공룡’으로 진화했다.



줌을 이끌고 있는 위안 CEO는 세계적인 갑부 대열에 올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위안 CEO의 재산은 올해 들어 36억달러에서 75억달러(5월 초 기준)로 늘었다. 전 세계 상위 500대 부자 중 재산 증가율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산둥성 출신 공학자인 그는 1997년 이후 미국 웹엑스와 시스코를 거쳐 2011년 줌을 창업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줌의 성장세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줌은 2분기 예상 매출액의 경우 1분기보다 높은 4억9550만~5억달러로 제시했다. 켈리 스텍켈버그 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데이터센터를 더 확장해 경영 효율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줌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도전 과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화상회의 시장이 갑자기 커진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점이 첫 손에 꼽힌다.

위안 CEO는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사용법을 간편화하고 기능 지원을 다양화하는 식으로 빠르게 고객 편의 전략을 펼쳐 고속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기존 IT거물들이 화상회의 앱 시장을 본격 공략하면 업계 선두주자 지위를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다. 구글은 화상회의 솔루션 ‘미트’를 9월 말까지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60분 무료로 쓸 수 있던 제한을 풀고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상회의 서비스인 ‘팀즈’를 가장 중요한 미래 먹거리로 꼽고 있다. 팀즈는 사무용 소프트웨어 MS오피스와 통합해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무 혹은 교육 활용도가 높다는 뜻이다. 페이스북은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중단했던 화상회의 서비스 ‘메신저 룸스’를 다시 출시했다.

또 다른 과제는 보안 논란이다. 줌은 화상회의의 고유 접속번호만 알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만큼 보안 조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 왔다.

줌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해커들의 표적이 된 이후 이른바 ‘줌 폭격(Zoom bombing)’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에 더해 줌의 데이터가 중국을 경유한다는, 다시 말해 줌은 무늬만 실리콘밸리 기업이고 실제로는 중국 기업이라는 ‘차이나 리스크’ 우려까지 겹쳤다. “중국이 줌을 통해 세계를 엿본다”는 것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줌이 보안 취약점을 두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보안 강화를 위한 다각적인 투자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