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가 전하는 ‘4차 산업과 예술’
by류성 기자
2019.05.19 07:00:35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9회)
블록체인과 예술
블록체인으로 활성화되는 미술 시장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미술 시장은 오래전부터 작품에 대한 증명서 위조와 위작 시비가 골칫거리였다. 4차 산업의 주요 기술인 블록체인과 예술이 만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익명성, 비가역성, 투명성이라는 속성이 미술 시장을 혁신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분산형 구조가 특징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콘텐츠 저작권 보호가 수월해지고 불법 콘텐츠 복제 및 유통, 저작권 권리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떠오르는 장르는 미디어 아트이다. 디지털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이 불법 복제된다는 점이다. 또한 미디어 아트가 상품성을 가지려면 작품을 물리적인 형태로 출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블록체인은 이런 문제를 디지털 희소성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한다. 제한된 수의 사본을 발행하고 이 소유권을 증명하는 고유 블록에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블록체인으로 암호화한 사진작가 케빈 아보쉬의 디지털 사진작품 포에버 로즈(Forever Rose)가 10억 원에 팔렸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수정은 물론 위변조도 불가능하도록 했다. 무한복제가 가능했던 일반 디지털 사진과는 달리 세상에서 하나뿐인 예술품이 된 것이다.
미술 분야에서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중개자의 역할을 축소시켜 기존 유통구조를 바꾸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시나스(Maecenas)는 세계 최초 미술품 블록체인 경매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부정 조작이 불가능한 고유 디지털 서명을 만든다.
베리스아트(VerisArt)는 블록체인과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해 미술작품이나 수집품의 인증서를 발급해주고 진위를 확인해준다. 아틀러리(Artlery)는 블록체인으로 예술가와 투자자를 연결하고 정해진 수만큼 작품을 디지털 복제해 분할 판매한다. 어스크라이브(Ascribe)는 작가가 올린 예술품마다 디지털 꼬리표를 달아 소유, 판매, 복제 등이 진행될 때마다 모두 기록해 진품임을 실시간으로 증명한다.
이외에도 미술작품 고유의 원본성과 유일성을 디지털 아트에서 구현하는 크립토펑크(Cryptopunk),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암호화폐를 이용해 거래가 가능한 다다(DADA),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오리온 볼트(Orion Vault) 등이 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한 블록체인도 여럿이다. 코닥이 발표한 코닥 원(Kodak One)은 사진 콘텐츠의 관리, 유통, 정산 구조를 구현한 플랫폼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 바이두가 공개한 토템(Totem)은 사진을 찍은 사람, 혹은 저작권자가 원본 사진을 제출하면 저작권자의 이름과 함께 제출 시각 등 해당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해둔다. 모네그래프(Monegraph) 역시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웹에 등록하고 이미지 사용 기록을 추적해 저작권료를 블록체인 내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한다.
전통적으로 미술 시장은 아주 부유한 소수가 지배해왔다. 현재에도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경매회사의 절대 독점으로 세계 미술 시장은 운영된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예술의 융합으로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과거 미술계에 존재하지 않던 공동 소유, 공동 분배의 개념을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모나리자가 블록체인으로 판매된다면 한 명이 구매하는 게 아니라 여러 다수가 조금씩 쪼개 지분을 나눠 갖는 식이다. 주식 같은 방식이다. 예술가들 또한 블록체인을 활용해 작품을 공유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물론 아직 한계는 있다. 블록체인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집에 작품을 걸어둘 수는 없다.
비트코인으로 대두되는 암호화폐 과열 투기 현상도 있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안정화에 접어든 것처럼 블록체인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블록체인이 불러올 미술 시장의 변화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