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탄산이 폭발한다

by최은영 기자
2019.05.09 05:00:00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2014년 여름부터 폭발의 조짐이 보였다. 롯데칠성이 출시한 탄산수 브랜드 ‘트레비’를 중심으로 많은 탄산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탄산수 시장이 급성장한 2015년, 2016년 여름에는 누구나 예쁘게 생긴 탄산수 병을 들고 다니며 한 모금씩 마시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다. 우리가 탄산수를 익숙하게 대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1991년 유럽에 난생 처음 갔을 때 물을 사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실수로 탄산수라도 고르게 되면 ‘돈 버렸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물을 사 마시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물에 탄산감이 있으면 촌스러운 내 몸은 ‘그냥 맹물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탄산수 시장의 성장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영양학자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연구원들이었다.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이들의 관점에서 탄산수 시장의 성장은 기존 탄산음료 시장을 대체하며 당 섭취량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이다. 국민들이 당이 없는 탄산수를 마시게 되면 같은 탄산감과 함께 당 함량이 높은 콜라, 사이다, 환타 등의 소비가 줄어들게 될 것이므로 국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 마트와 편의점에서의 상황을 보면 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서 제공하고 있는 소매점 판매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분석을 해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탄산수뿐만 아니라 콜라, 사이다, 환타 등의 가당 탄산음료 역시 수년간 꾸준히 판매가 늘었다. 탄산수 소비의 증가가 가당 탄산음료를 대체하면서 당 섭취를 줄일 것이라는 가설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니 평상시 가당 탄산음료를 잘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도 탄산수를 먹게 된 후 가당 탄산음료를 마시게 되는 확률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즉, 탄산수로 탄산감에 익숙해지면 탄산 특유의 톡 쏘는 청량감에 대한 선호가 올라가서 예전에 먹지 않던 가당 탄산음료도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음료 시장에서는 탄산이 폭발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편의점 쪽 전문가들과 논의해 보았더니 ‘기후 변화’ 이야기를 한다. 여름이 길어지고 더욱 더워짐에 따라 사람들이 더 많은 탄산음료를 소비하고 있다. 음료 기업과 논의해 보아도 비슷한 의견을 낸다. 날씨가 더워지니 소비자들은 뭔가를 더 마시고 싶어 하고, 여러 음료들 중 탄산음료를 더 집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탄산음료는 특유의 청량감 때문에 입안에서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탄산수의 증가세보다 가당 탄산음료의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탄산이 들어간 음료에 대해서 조금 더 둘러보니 주류 산업에서도 재미있는 현상들이 관찰된다. 최근 수년간 국내 주류 시장은 전반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분명히 성장하는 품목들이 눈에 띈다. 국내 주류 시장 규모의 60%를 차지하는 맥주 시장에서는 특히 수입 맥주가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 생산 수제맥주 역시 틈새를 비집고 성장하고 있다. 맥주 맛의 핵심은 역시 시원한 탄산감이지 않은가! 반면에 맥주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국민술 ‘소주’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국내 소주 시장의 규모는 10% 정도가 줄었다. 소주보다 더 높은 도수의 위스키 시장의 규모도 함께 감소하고 있다.



무더워진 날씨가 대한민국 소비자들을 교묘히 조정하는 것인지, 우리 전통주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오랜 기간 소비자들이 외면해온 막걸리의 시장규모가 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더운 여름 날밤에 편의점이라면 결국 맥주 아니면 막걸리이지 않은가? 생 막걸리 특유의 살아있는 탄산감에 대한 매력을 젊은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날씨 탓만은 아니다.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예쁜 패키지에 담은 다양한 저도수 막걸리를 출시하고 있고, 이에 젊은 소비자들이 반응하고 있다. 와인 쪽 전문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지난 한 해 가장 각광받았던 성장세의 와인 품목으로 모두 스파클링 와인을 꼽는다. 일반 음료뿐만 아니라 국내 술 시장에서도 맥주, 막걸리, 스파클링 와인 등 탄산감이 풍부한 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때론 내 위장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한 번에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과 음료의 양은 한정적이다. 무언가를 더 먹으면 무언가를 덜 먹게 된다. 탄산수를 포함한 탄산음료를 더 마신다는 것은 무언가는 덜 마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최근 탄산음료를 더 마시는 대신 무엇을 덜 마시고 있을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스류 소비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시장 규모 1위 주스인 오렌지 주스, 2위인 한라봉 주스, 3위인 포도 주스 모두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해태의 ‘썬키스트’, 롯데칠성의 ‘델몬트’가 만들어 낸 ‘100% 과즙 주스’라는 1세대 혁신, 2007년 풀무원의 ‘아임리얼’이 만들어 낸 ‘비 가열 생착즙 주스’라는 2세대 혁신 이후 국내 주스 시장에서는 별다른 혁신이 없었다. 소비자들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는 주스 시장에 싫증을 내고 있으며, 주스에 함유된 과당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최근 편의점의 냉장 음료 매대에서 주스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며 다른 음료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료 기업에 친절하게 힌트를 드린다. 주스를 발효하면 탄산이 나오고 당이 줄어들고 과일의 향은 유지된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탄산을 원한다. 혁신적인 주스가 나와서 소비자들에게 사랑도 받고, 주스 소비의 감소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과일 농가들도 웃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