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보석(保釋)'은 특권인가, 권리인가

by최은영 기자
2019.02.25 05: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최근 유명인사들의 ‘보석’이 화제다.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寶石)이 아니라 보증금의 납부 등을 조건으로 하여 법원이 구속집행을 정지함으로써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하는 보석(保釋)을 일컫는다.

대중에게 보석은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가진 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보석’ 논란을 일으킨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언론에 보도된 유명인사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경수 도지사다. 이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은 보석청구를 하였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3월 중에 청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되든, 법정에서 구속되든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충격이다.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에도 큰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이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낙인이 찍힌다. 이 때문인지 구치소에 구금된 피고인을 접견 가는 발걸음은 항상 무겁다. 기록을 검토하며 사건과 관련된 애기를 나누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 분들의 하소연을 듣는 시간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낯설고 비좁은 공간을 탓하며 잠자리가 불편하다거나 가족과 사회에서 하던 일을 걱정한다. 건강하던 분들도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구속된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잠시라도 풀려날 수 있게 하는 보석제도는 그들에게 있어 진정으로 보석(寶石)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석의 활용범위는 해당 국가의 법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륙법계에서는 가진 자의 특권이라는 이유로 별로 활용되지 못하는 반면, 영미법계에서 보석권(right to bail)은 절대적 권리로 인정되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CSI’와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 범죄자들이 보석으로 풀려나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의 보석기피경향이 지배적인 듯하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작년에 구속기소 된 5만3555명 중 보석청구 한 인원은 6079명이며 이 중 2204명이 보석허가 되었다. 보석청구율은 11.4%이며, 보석허가율은 36.3%에 불과하다. 아마도 법의 형평성이 중시된 탓이 아닌 가 싶다. 필자 역시 맡은 사건 중 보석허가 된 경우는 딱 2건이었다. 초범이고 피해자와 합의하는 등 구속 당시와 비교해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였다.



앞서 언급한 유명 인사들의 경우는 어떨까. 형사법이 정한 필요적 보석의 제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지 여부를 중점으로 검토해야 하며, 그 외 재판절차 진행과정과 일반 국민들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므로 중대한 죄를 범한 때에 해당한다. 즉 필요적 보석의 제외사유에 해당된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따라서 탈모, 당뇨 등 총 9개의 질환을 앓고 있고 이 중 수면무호흡증은 돌연사 위험도 있다며 ‘병보석’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피고인은 누구라도 질병이 걸리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구치소에는 병동과 의료진이 상시 근무하고 있으며,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구치소에서 대부분 해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일반인들 중 병보석으로 나올 정도면 상태가 몹시 위중한 경우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미 검찰이 장기간 수사와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증거를 다 수집한 만큼 증거 인멸 우려도 없고 전직 대법원장 신분으로서 도주할 우려도 없으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청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는 수많은 판사들의 참고인 진술이 주요 증거로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칫 그들을 상대로 진술을 회유할 우려가 있고 구속 이후에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다는 검찰의 반발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김 지사의 경우는 투표로 뽑힌 선출직이고 도정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 홍준표 전 지사의 경우처럼 불구속재판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 1심 재판장을 언급하며 과하게 판결을 비판하며 정치공세를 한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사법 신뢰보다는 사법 불신이 팽배한 시절이다. 이들의 보석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법원은 오직 법리와 형평에 맞추어 결정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