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한 후보 찍을 겁니다"…문자폭탄·유세소음에 시민들 뿔났다
by권오석 기자
2018.06.11 05:30:00
선거소음 신고 하루 평균 535건 4년새 2배 급증
시위, 공사장과 달리 유세장 확성기 음량은 제한없어
선관위 "유세소음신고 들어와도 후보에 자제 요청만"
|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방신시장 네거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집중유세에서 선거 운동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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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지난 주말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영주(55)씨는 확성기를 단 선거유세 차량 소리를 참지 못해 창문을 닫으려다 멈칫했다. 초여름 날씨에 창문을 닫았다 더위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을 거란 생각에서다. 이씨는 “선거철인 건 알지만 이 정도 소음은 민폐 수준”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가장 확성기 안 틀고 조용히 선거운동을 한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 난립 등으로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특히 휴일을 소음으로 채우는 확성기 유세차량에 대한 불만이 크다. 집회·시위와 달리 유세장 소음은 단속 규정이 없어 아무리 크게 확성기를 틀어도 법적으로는 제한할 방법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선거홍보 문자와 여론조사, 유세전화도 짜증거리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 시·구의원, 교육감 등 뽑아야 할 후보들이 많아 불가피하다는 옹호론도 나온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직장인 권모(29)씨는 주말에도 걸려오는 자동응답(ARS) 유세 전화에 단단히 뿔이 났다. 권씨는 “유일하게 쉬는 날 꼭 전화해서 괴롭혀야 하느냐”며 “내 전화번호가 무단으로 유출된 것 같아 선관위에 통해 문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거 운동 소음을 규제해달라는 요청은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왔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으로 ‘선고 소음’을 내용으로 한 청원들은 약 250개가 게재됐다.
한 청원인은 “소음이 너무 심해 짜증이 나서 해당 후보는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며 “주변에 아이를 키우거나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은 선거유세 소음을 괴로워한다”고 호소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도 “주말에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선거 운동을 절제하는 후보를 뽑겠다”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에 접수된 선거소음 신고는 하루평균 530여건에 달한다. 4년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접수된 선거 소음 신고는 하루 평균 535건으로 2014년 6월 지방선거(211건)로 무려 253%나 증가했다.
선거법상 규정이 촘촘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차량 등 대형 확성기를 동원한 선거 운동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능하다.
휴대용 마이크를 비롯한 소형 확성장치만 사용할 경우와 전화를 이용한 선거 운동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휴일·근무일을 구분하거나 확성기 음량에 대한 조항은 없다. 집회나 시위 때는 주간 소음 규제가 75데시벨, 공사장은 65데시벨이다.
경찰 관계자는 “선거 유세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로 볼 수 없기에 뾰족한 수가 없다”며 “신고가 들어온다 한들 유세를 중단하게 할 권한이나 규정은 없어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신고가 들어올 경우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소리를 줄여달라는 정도만 요청할 수는 있다”고 답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확성 장치의 최고 출력에 대한 조문을 추가해 선거 소음 규제를 하자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 넘어간 이후 아직 계류 중이다.
고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행안위로 넘어간 후 다른 법안들에 밀리는 탓인지 아직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