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미래 달린 4차산업혁명…규제 철폐 아닌 '규제 리셋' 해야
by김상윤 기자
2017.11.20 05:30:00
[화통토크]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인터뷰
韓 4차산업혁명 적응 세계25위
말레이시아·포르투갈보다 뒤져
제조업 육성 위해 만든 인허가 등
불필요한 규제들 전부 폐지하고
시장 창출 막는 규제도 대폭 완화
우리가 강점 갖고 있는 제조업에
신기술 융합 '선택과 집중' 필요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산업혁명은 기존 체계를 완전히 바뀌는 파괴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규제를 푸는 방식이 아닌 기존 규제 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리셋이 필요합니다. ‘지대(地代) 추구의 덫’을 덜어내고 기존 세력과 새로운 세력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호황 등으로 한국 경제가 3년 만에 3%대 성장 복귀가 확실시 되고 있지만, 샴페인을 터트릴 수는 없다. 향후 미래 먹거리가 불투명하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책을 보이지 않고 있어 언제든 잠재성장률이 추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등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고 하지만 혁신성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네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17일 세종시 산업연구원에서 만난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 한국 경제 미래가 달려 있다”면서 “이번에 제대로 규제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실기(失機)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정의는 엇갈리지만 초연결과 초지능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빠른 속도로 파괴적 기술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가 바뀌고 있다. 인공 지능(AI),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이 기존 산업과 서비스에 융합되는 게 대표적인 현상이다.
유 원장은 “1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줬다면 2차산업혁명은 인간의 손이 아닌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체제로 바꾸었고, 3차산업혁명은 정보와 지식 유통을 보다 빠르게 만들었다”면서 “4차 산업혁명은 사람 대신 컴퓨터가 빅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드는 등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대신해 다양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같이 정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 수준은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에 견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스위스계 UBS 은행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술, 교육시스템, 사회적 기반 등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수준을 평가했는데, 한국은 25위에 그쳤다. 이는 말레이시아(22위), 포르투갈(23위), 체코(24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유 원장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AI·빅데이터 분석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수준은 중간 이하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기술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미 상당한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과거 한국 제조업이 성공한 것처럼,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따라갈 수 있을까. 유 원장은 “현재 AI, 빅데이터 등 기술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축적할 수 있는 기본 기술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제조업에 신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유 원장은 성공사례를 만들면서 시장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플래그십 프로젝트’가 활성화를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를 연구할 때 중앙·지방 정부뿐만 아니라 완성차업체, 부품업체, IT업체가 함께 팀을 만들어서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산업전반에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전력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4.0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전력산업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민간과 협업체계를 구축한다면 외국에 비해 훨씬 빠르고 체계적으로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특히나 유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각종 규제와 법제도의 정리·정비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규제완화를 꾸준히 해왔지만,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일부 기득권 세력을 위한 규제만 완화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 제도 틀에서 각종 이익을 얻고 있는 지대 추구 세력들은 변화하기보다는 새로운 물결에 저항하고 진입장벽을 쌓고 있다”면서 “기존 전통 제조업이나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인허가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뒤떨어진 불필요한 규제들은 근원적으로 폐지하고 시장 창출을 막는 규제들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AI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신사업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과도한 개인정보보호법 등도 이제는 답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늘릴 것이냐 줄일 것이냐는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산업으로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나타나면서 단순 노동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반박이 팽팽하다. 유 원장은 “노동경제학 차원에서 본다면 새로운 혁명이 일어날 경우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면서 “일시적으로 저숙련 일자리가 감소되는 현상이 벌어지겠지만, 지난 산업혁명을 보더라도 새로운 산업이 생기면 일자리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늘어나는 일자리의 충분한 공급이 뒷받침되느냐가 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과도기적 ‘일자리 미스매치’를 풀기 위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저숙련 노동자를 교육해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생산성 향상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유 원장은 “새 시대에 뒤쳐지지 않도록 국가가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다양한 직업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좀더 강화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동시에 국가의 역할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하는 소득분배 문제 해결도 있다. 단순히 미래상을 얘기하기보다는 변화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국가경제위원회 등을 통해 지난해 12월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가능한 많은 혜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개발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을 감안해 실업보호 제도를 강화하거나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 원장은 “4차산업혁명은 현재의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가는 선제적으로 어떻게 (혜택을) 재분배할지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생산소비구조 변화에 따른 큰틀의 세제 개편을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낙오된 사람을 지원해 다시 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 원장은 1988년 현대경제연구원에 입사해 25년간 경제·산업 연구를 하며 동향분석실장과 경제연구본부장 등을 지낸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코미스트다. 거시와 미시를 함께 아우르는 경제통으로 지난해 민간연구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장에 선임됐다. 지난 9월 산업연구원은 ‘4차산업혁명의 글로벌 동향과 한국산업의 대응전략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한국의 미래산업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프로필]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학사·석사·박사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 경제연구본부장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 △한국경제학회 경제교육위원 △한국생산성학회 부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속발전분과장 △제20대 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