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청원경찰·운전기사…가장 서러운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by권소현 기자
2017.05.26 06:00:00
직원외 인원 1000명 이상
용역업체서 수수료 떼고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급
초과근무에도 수당 제대로 못 받아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 나는 은행 청원경찰이다. 돈이 오가는 곳이라 늘 긴장해야 한다. 보안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현금입출금(CD)기 관리나 동전관리도 해야 하고 지점 방문고객에게 안내하는 일도 해야 한다. 우편물 정리도 내 몫이다. 가끔 지점 직원들의 민원도 해결해준다. 하지만 은행 소속이 아니라 용역업체 파견근로자라 한 달 월급 150만원에 불과하다. 은행에 소속된 비정규직이 부럽다.
. 나는 한 은행 임원 운전기사다. 아침 7시까지 임원 집 앞으로 태우러 가는 것으로 업무가 시작된다. 낮에는 임원의 일정에 따라 호출하면 차 대기시키고 목적지까지 운전한다. 점심은 늘 혼자 먹는다. 임원은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이 있다. 저녁 장소까지 태워다 주고 끝날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저녁 10시를 넘기는 것은 부지기수고 자정을 넘길 때도 많다. 하지만 잔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한도는 정해져 있어서 일한만큼 대가를 받지는 못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은행권은 이미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한데다 몇몇 은행을 제외하고는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마저도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한 상태라 비정규직 전환의 바람에 한발 비켜서 있다.
하지만 은행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서는 여전히 소외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파견 근로자들이다. 정규직은 물론 은행 비정규직보다도 처우에서 더 차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직원 외 인원은 농협은행이 3195명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이 2000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은 1300명에서 1800명 사이였다. 직원 외 인원은 주로 협력(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은행에 파견근무하는 이들로 주로 청원경찰, 청소부, 안내원, 운전기사, 콜센터 상담직원 등이다. 아르바이트생도 포함된다.
은행 파견 근로자 대부분은 청원경찰이다. 보통 지점에 한 명씩 배치돼 있어 4대 시중은행마다 1000명 안팎의 청원경찰이 일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이 이용하는 청원경찰 협력업체는 11개 정도다.
청원경찰은 현금이 오가는 장소에서 일하는 만큼 늘 은행강도나 도난 등에 노출돼 있어 긴장도가 높고 보안 외에도 각종 잡무를 해야 하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내 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청원경찰 A씨는 “월급이 250만원인데 파견한 용역업체에서 100만원을 떼고 150만원을 지급한다”며 “이는 20년 차나 신입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은행은 협력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통해 파견받은 인력이기 때문에 처우나 임금수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임금과 4대 보험 관련한 비용을 모두 합해 협력업체에 지급하면 업체가 근로자와의 계약관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며 “협력업체와 파견근로자간 계약관계나 계약형태까지 은행이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원경찰이나 청소인력은 지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일하기 때문에 그나마 근무시간이 일정하다. 또 다른 파견직인 운전기사들은 과도한 시간외근무에 따른 고통을 호소한다. 임원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새벽 출근, 밤 퇴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시중은행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임원 대부분 저녁 일정이 있기 때문에 퇴근하면 자정이 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에 대한 추가 근무수당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국책은행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C씨는 “용역회사 파견직으로 일하다 비정규직이 문제 되면서 은행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며 “하지만 정규직에 비해 보너스나 복지에 차별이 있고 한 달에 100시간 가까이 잔업을 하고 있는데 잔업수당이 48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월급은 거의 고정적”이라고 말했다.
청원경찰 A씨는 “고임금이나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그저 용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직접고용이 돼 고용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