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비율 세계 최고인데..국내 빌트인가전 지지부진 왜?

by양희동 기자
2016.09.11 08:00:00

규격화 주택인 아파트 비율 60%에 달해
빌트인가전 시장 규모 4500억 수준 미미
가전 개별 구매 성향, 다양한 취향 원인
삼성·LG, 고급아파트에 차별화 상품 고심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지난 5월 한 대형건설사가 서울 서대문구에 공급한 브랜드 아파트를 분양받은 회사원 이모(36)씨는 며칠 전 중도금 대출 신청을 하려고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이날 모델하우스에서는 층을 나눠 1층에선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 신청을 받고 2층에서는 발코니 확장과 빌트인가전 등 옵션 계약이 진행됐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전기·가스쿡탑 등 여러 빌트인가전 옵션이 있었지만, 이씨는 발코니 확장 외에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분양 계약자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

이씨는 “빌트인가전은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특별히 싸지도 않은데다, 기존에 쓰고 있는 가전제품이 있어서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IFA 2016에서 선보인 빌트인라인인 ‘컨템포러리 라인’.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국내 양대 가전업체가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IFA 2016’에서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빌트인가전 시장 진출을 위한 신제품과 전략을 앞다퉈 선보였다.

앞서 지난 8월 삼성전자는 미국계 프리미엄 가전업체인 ‘데이코’를 인수했고, LG전자는 7월 빌트인 주방가전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안방인 우리나라에선 빌트인가전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전 세계 빌트인 가전시장 규모는 연간 130억 유로(약 16조원)에 달하며 가전시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유럽은 40%, 미국은 15%에 이른다. 반면 국내 빌트인가전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4500억원 수준으로 약 1조원 대인 공기청정기 한 개 품목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빌트인가전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외국보다 오히려 탄탄하다는 평가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주택 수는 총 1637만호로 이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9.9%(981만호)다. 이들 아파트 중 10%만 빌트인가전 수요로 흡수해도 약 100만 가구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단독주택 중심인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할 때 규격화된 아파트 비율이 60%에 달하는 한국은 빌트인가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LG전자의 프리미엄 빌트인가전 라인인 ‘LG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사진=LG전자]
문제는 국내에선 북미나 유럽과의 문화적 차이로 빌트인가전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는데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옵션으로 빌트인가전을 선택하는 비율은 10~20% 수준이다. 특히 냉장고는 고작 2~3%에 불과하다. 건설사들도 수요가 적다보니 가전업체와의 ‘B2B’(기업 간 거래)를 대부분 자회사나 대행업체에 맡기고 있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선 빌트인에 대한 관심도도 떨어지고 이사 갈 때 불편하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아파트는 선(先) 분양을 하기 때문에 최신 빌트인가전을 선택해도 계약 후 2~3년 뒤 입주 시점엔 구형 모델이 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양대 가전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런 문제점들을 분석해 국내에서 지지부진한 빌트인가전의 시장 확대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국은 인테리어 취향이 다양한데다 원룸이나 스튜디오 형태 등 1인 가구 중심으로 빌트인가전이 발달해 한계가 있었다”며 “일반인들의 해외 경험이 늘면서 빌트인에 대한 관심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 향후 고급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요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빌트인은 주방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디자인으로 맞추는 개념인데 별도 구매가 보편화 된 우리나라는 아직 태동 단계”라며 “한국시장에는 전통적인 유럽형 빌트인보다는 ‘세미 빌트인’ 형태로 접근해 건설사는 물론 가구업체 등과도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