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 김근수 "古典이 지루하다? 다이내믹하다!"

by오현주 기자
2013.08.08 07:09:00

여신금융협회장
노자 ''도덕경''서 마음 비우는 법 배우고
공자 ''논어''로 세상 사는 가르침 받아
첨단 IT기기도 결국은 사람 지치게 해
삶·세계·신구 담긴 고전서 인생 터득해야

경영철학은 흔히 제자백가와 연결된다. 고전에 몰입 중인 김근수 회장에겐 쉬운 결론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다(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달변이었다. 인생의 길목서 만난 이들의 면면을 쉼 없이 풀어놨다. 하나같이 옛 인물이었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사마천…. 서울대 경영학과 3학년에 다니던 중 행정고시에 ‘덜컥’ 합격했다. 이후 30년 넘게 재정·금융분야 공직을 두루 거치며 “지루하게” 살아왔다. 인생서 큰 변화라면 두 차례. 30대 초반 시력을 잃을 뻔했던 일과 MB정부 때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으로 재직 중 국가브랜드위원회 사업지원단장 발령을 받았던 것. ‘잠시’일 줄 알았던 외출이 길어졌다. 지난해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사무총장직까지 거치고야 끝났다. 그 4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희한하게 풀린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신금융협회로 옮겨 온 지 두 달 남짓. 지난 1일 만난 김근수(55) 여신금융협회장은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을 깔고 길게는 지난 4년, 짧게는 4개월여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퇴근하던 때의 독서기를 털어놨다.

▲“비워내면 고요해진다”

“사실 밀어뒀던 박사학위논문을 쓰려고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읽고 나온 건 ‘동의보감’ ‘사주명리학’ 같은 고전이다.” 지난 6월 여신금융협회장에 부임하기 전까지 넉 달여 도서관에 적을 뒀던 때의 일이다. “마음이 싱숭생숭해 책 읽기 좋았다”고 말한다. 30여년 쉰다는 걸 모르고 달려왔으니 여수박람회가 끝나고 즉각 결정되지 않은 이후 행보가 편치 않았을 게다. 그렇다고 새삼 고전에 탐닉했던 건 아니다.

적잖은 책읽기를 하지만 장르 편식이 있다. 주로 역사와 고전에 기울어 있다. “지루하지 않다”가 이유다. 보통의 상식에 반하는 발언 아닌가. 이를 의식했는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하며 웃는다. 고전 중에선 특히 노자의 ‘도덕경’과 공자의 ‘논어’를 마음에 담았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도덕경’이다. 말 그대로 허정(虛靜)이다. 비우고 고요해진다는 뜻이다.” 사실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건 무언가 들어 있을 때가 아닌가. 비워내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까지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논어’는? “한마디로 싹수 있게 세상사는 방법을 이른다. 공자의 삶처럼 고난을 거치면서 균형잡힌 인간형을 이루게 하는 가르침이다.”

▲남자의 후반생 어떻게 살 것인가

뒤늦게 변화를 겪다보니 당연히 남은 후반기 생에 관심이 갔다. 이즈음 손에 닿은 책이 있다. 일본인 중국학자 모리야 히로시가 쓴 ‘남자의 후반생’이다. “우여곡절을 겪지만 성공으로 생을 마무리한 중이·사마천·여불위·왕휘지 등, 중국 선인들의 후반생을 통해 범인은 무엇을 배울 건가를 일러주는 책이다.” 책을 접한 뒤론 주위에 나눠줄 정도까지 됐다. “우리 모두 첫 직업에서 은퇴한 뒤 생이 너무 길어졌다. 자칫 30년쯤 허송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데 적절한 지침들이 보인다.”



내친김에 인문학으로 화제를 넓혔다. 김 회장은 ‘인문학이 대세’란 주장에 반기를 든다. 자신의 범주를 확장하는 책읽기를 하려면 굳이 인문학에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대안은 교차독서다. “경제·경영을 공부할 때 같이 봐야 하는 건 인문학보단 자연과학이다. 물론 의학과 과학을 공부할 땐 인문학이 필요하다.” 요지는 융합이다. 그러면 숲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거란 얘기다.

▲‘고시계’부터 ‘도덕경’까지

가치관에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고시계….” 반은 진지했고 반은 농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간 ‘고시계’의 합격기를 읽으면서 고시세계에 뛰어들었기 때문. 합격한 뒤로는 탄탄대로. 스스로의 표현대로 ‘출세지향주의’로 흘렀다. 처음 브레이크가 걸린 건 1989년 눈 수술 때문이다. 시력을 완전히 잃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종교를 갖게 된 것도 그 직후고 고전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노자의 ‘도덕경’이 첫 책이었다. ‘인생 뭐 있어’란 생각이 들었단다. 앞만 보고 갈 건 아니란 생각도 처음 했다. “고전이 좋아지는 게 보통 40대 이후가 아니냐. 그런데 나는 그 시절 문득 고전이 좋아졌다. ‘논어’ ‘맹자’ ‘한비자’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전도 꽤 다이내믹하다”

돌고 도는 세상 이치도 고전에서 배웠다. “최첨단 IT기기에도 결국 사람들은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전이 영원한 게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뀌었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다시 되돌아가는 것.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답인 듯하다.” 옛것을 연구해 새 지식을 얻는다는 뜻이지만 결국 김 회장이 하고 싶었던 말은 새 지식도 옛것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란 의미였을 거다. “세상이 다 그렇더라. 유행처럼 돌다가 기본을 찾아가더라.” 그러고 보면 그의 말처럼 ‘고전도 꽤 다이내믹하다’.

김 회장에게 노자는 형이상학, 공자는 형이하학이다. 노자는 마음이고 공자는 실천이란 얘기다. “마음은 노자처럼 손발은 공자처럼 쓰면 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당신의 머리부터 가슴까지가 가장 멀다고 했던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심장에서 손발까지가 가장 멀다. 그나마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고전이다.” 읽다 보면 다 통한다고 했다. 목표와 철학이, 동양과 서양이, 옛것과 새것이. “철학을 보라는 건 싫은 음식 먹으라는 것 같겠지만” 그가 젊은이들에게 고전을 읽히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