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적자쇼크' 국내 화학업계의 앞날은?[플라스틱 넷제로]

by김경은 기자
2023.02.26 09:00:00

순환경제 원년<하>
롯데케미칼 창사 이래 첫 적자
NCC 6개사 영업이익률, 2016년 이후 곤두박질
"천연자원 기반 기업 재앙적 현실 맞을 수도"
재활용 폴리머 대량생산 대만·태국 기업은 호실적

[그래픽: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2022년 3분기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충격적 실적을 안겨다 줬다. 롯데케미칼은 창사 이래 첫 분기 적자를 냈고,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 ‘하향검토’라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롯데케미칼의 앞선 과거 6년간 영업이익은 연평균 1조7401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2022년 롯데케미칼은 7584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석유화학업계 업황부진이 덮친 결과다.

롯데케미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나프타 분해 시설(NCC·naphtha cracking center)을 보유한 화학기업 6개사(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스, 여천NCC,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영업이익률은 평균 0.5%로, 1분기(4.8%), 2분기(4.0%)에 이어 큰 폭 감소했다. 딱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수준이었다. 올레핀 비중이 높은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여천NCC, 대한유화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여파가 컸다. 올레핀은 나프타를 기반으로 기초유분공정을 거친 원료다. 화학공정을 거쳐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으로 생산된다.

화학업계의 대표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판매가-원료가)가 2021년 상반기 정점을 찍고 한없이 미끄러지면서다. 유가 상승, 중국의 생산 확대로 인한 과잉공급 등의 여파다. 지난 2월 20일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187달러로, 손익분기점은 300달러로 본다. 2023년 2분기부터는 캐파(CAPA) 조정으로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분석들이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화학업계에 대한 전망은 우울하다. 2000년대 이후 6개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6년 15.25%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을 제외하면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화학기업 일부는 창사 이후 직원들에게 처음으로 연말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했다. 높은 투자로 인한 재무적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화학회사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인력들은 유출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수요 위축이 이어지면서 화학업체 실적의 유의미한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며 “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석유화학업계의 고전은 탄소세, 플라스틱세 등 환경 비용이 기업에 직접적으로 부과되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바다. 탄소 다배출 업종으로 탄소국경조정세의 압박과 더불어 유럽과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버진(석유기반)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는 흐름이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자원 기반 원료 생산업자의 ‘가격결정력’은 중장기적으로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지난해 적자의 원인 역시 원가부담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판가 전가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기관들은 지목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액센추어 분석에 따르면 21세기에 진입하면서 그간 경제성장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로 40년간 하락해오던 자원가격이 상승 반전하는 대전환이 일어났다. 성장으로 인한 인구증가와 중산층의 증대로 인해 자원수요가 가파르게 늘면서 수요와 공급간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면서다. 이런 21세기 초 경제패러다임을 소비의 시대라 명명하기도 한다. 경제가 지속 성장함에 따라 인구 증가와 맞물려 더욱 중산층은 확대되고 이 같은 격차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참고로 세계 인구는 2050년 95억명, 2100년엔 110억명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 가격으로의 전가가 원활하지 않는 천연자원 기반 생산업자들에겐 재앙과 같은 현실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석유, 구리, 코발트, 리튬, 은, 납, 주석 등과 같은 핵심 자원이 50~100년내에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자원추정량 예측치는 매우 불확실하다.



이는 석유화학기업들이 성장동력을 폐플라스틱에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을 중심으로 폐플라스틱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재생 플라스틱은 버진 플라스틱 대비 30~50% 가량 높은 가격에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소위 품귀현상도 나타난다. 2년 이상 구매대기가 밀려 있다.

쓰레기가 핵심 자원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는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을 위한 규제 강화 흐름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후발주자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자본주의의 적자생존 본능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은 20년 가까이 자원순환과 순환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해왔다. 그 동안 높은 비용 투자를 통해 체제를 차츰 변화시켜온 만큼 유럽은 향후 비유럽권 제조기업을 경쟁열위에 처하게 할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교한 논리와 풍부한 설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페트 리사이클링 선두에 있는 몇몇 석유화학 기업들, 생산시설은 유럽, 미국, 일본에 집중.(출처:민더루 재단)
이 같은 흐름 동참해 빠르게 사업 전환을 시도한 기업체들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재활용 폴리머를 대량 생산한 업체는 대만의 ‘FENC’와 태국의 ‘인도라마 벤처스’ 정도가 꼽힌다. 이들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24.27% 증가했다. 특히 3분기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6억600만달러(한화 약 7800억원)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1949년에 설립된 FENC는 타이완에 본사를 두고, 수직적으로 통합된 세계 3대 폴리에스테르 생산업체다. 식품 등급의 재활용 페트(PET) 및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필라멘트의 세계 최대 생산업체로 꼽힌다. 인도라마 벤처스는 PET와 화이버 부문 글로벌 화학 업체로, 설립자인 알로크 로히아(Aloke Lohia) 대표이사는 보스턴컨설팅사가 선정한 2021년 아시아 10대 경영인에 오르기도 했다. 인도라마는 전략적 인수합병 및 조인트벤처(JV) 설립을 통해 재생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호주의 비영리 민간단체 민더루 재단에 따르면 2021년 페트의 재활용에 적극적인 석유화학 회사는 6개에 불과하며, 이들 중 인도라마 벤처스와 FENC는 각각 23만톤(10%)와 18만톤(8%)을 생산해 대규모 생산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는 이들 기업의 버진 페트 생산량 각 400만톤, 200만톤에 비하면 6~9% 수준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재활용 산업에 뛰어들었으나, 갈 길이 만만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