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승리 선언할 때" vs "인플레 둔화 멀었다"(재종합)

by김정남 기자
2023.01.13 06:23:16

12월 CPI 둔화에 월가는 ''갑론을박''
시장 예상 부합…14개월만의 최저치
유가 큰폭 하락…식품·집세·서비스↑
시장 안도하되 지나친 환호는 없어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인플레이션 압력이 조금씩 완화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소비자물가가 1년 전과 비교해 6.5% 오르면서 월가 예상에 부합했다. 다만 주거비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6.5% 수치 자체는 높다는 점에서 안심은 이르다는 진단도 있다.

이에 따라 월가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의 행보를 두고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다. 연준이 당분간 기준금리를 올리되 속도는 조절할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이지만, 일각에서는 물가 완화와 함께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연준이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5%를 기록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6.5%)와 같았다. 연준의 물가 목표치(2.0%)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지만, 지난 2021년 10월 이후 1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폭이라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이 조금이나마 완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전월과 비교하면 0.1% 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4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이 역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휘발유 가격이 한달새 9.4% 폭락하는 등 에너지 부문은 4.5% 떨어졌다. 이번 물가 둔화는 에너지 가격 하락에 기반했다는 의미다. 중고차(-2.5%)와 신차(-0.1%) 가격도 하락했다. 그러나 주거비(0.8%), 교통서비스(0.2%), 의료서비스(0.1%) 등 서비스 물가가 계속 뛰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식료품(0.3%), 의류(0.5%) 역시 올랐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5.7% 뛰었다. 전월과 비교한 수치는 0.3%를 보이며 예상치에 부합했다. 근원물가는 변동성이 큰 품목을 뺀 것이어서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준다. 일부 시장 인사들이 헤드라인 수치보다 이를 더 주요하게 보는 이유다.

시장은 예상대로 나온 CPI를 보면서 비교적 안도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에 맞춰 앞으로 25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시장은 연준이 다음달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때 4.50~4.75%로 25bp 올릴 확률을 93.2%로 보고 있다. 전날 76.7%보다 큰 폭 뛰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맬번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올해 몇 차례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한 번에 75bp씩 올리던 시대는 확실히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앞으로는 25bp 인상이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하커 총재는 FOMC 내에서 매파에 가깝다고 평가 받는 인사다.



시티즌스뱅크 웰스매니지먼트의 필립 노하트 시장조사 디렉터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예상과 거의 일치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며 “연준은 통화 긴축을 이어가되, 더 느린 속도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긴축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승리를 선언하고 금리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지금 여기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채권시장은 이번 발표 이후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채권금리 하락).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장중 4.109%까지 떨어졌다. 현재 연준 기준금리(4.25~4.50%)를 훨씬 하회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431%까지 내렸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한 식료품점에서 한 고객이 야채 등을 고르고 있다. (사진=AFP 제공)


다만 주거비 등 서비스 물가 상승세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긴축 강도를 급격히 떨어뜨릴 시기는 아직 아니라는 진단 역시 적지 않다. 특히 주거비(shelter)는 월세를 비롯해 주택담보대출 등 부동산과 관련한 모든 비용을 포함한 수치다. 이번 주거비 지수 내에서 임차인(Rent of primary residence)과 자가 소유자(Owners’ equivalent rent of residences) 모두 각각 0.8%씩 급등했다. 주거비는 CPI 내에서도 가장 ‘끈적끈적한’ 항목으로 꼽힌다.

모건스탠리 글로벌 투자사무소의 마이크 로웬가르트 포트폴리오 책임자는 “이번 CPI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면서도 “연준이 높은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위기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고 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시모나 모쿠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아직 승리 선언에 근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CPI 보고서와 같은 시각 나온 고용지표가 긴축에 힘을 실은 것도 변수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 대비 1000건 감소한 20만5000건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6000건 증가)까지 밑돌았다. 그만큼 미국 노동시장이 과열돼 있다는 뜻이다. CNBC는 “연준의 금리 인상을 견뎌낸 강력한 노동시장은 축복이자 저주”라며 “임금이 계속 오르고 인플레이션을 더 높일 위협 때문”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뉴욕증시는 장중 내내 보합권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CPI 보고서에 안도는 하되, 지나치게 흥분하지는 않은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64% 상승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34% 올랐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0.64% 뛰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을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 가정에 숨 쉴 공간을 더 많이 주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