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어쩌나]"안 할 순 없고"…토종 대신 키위·멜론, 굴비 대신 갈치 선물도

by이성웅 기자
2018.09.03 06:30:00

사과·배 도매가 전년比 20%대 올라
"예산은 빠듯한데"…유통업계, 인상폭 최소화 동분서주
피해 적은 구입처 찾아 마진 줄이고 수입 과일 비중 늘려

서울 시내 마트의 채소 코너에서 한 시민이 폭염으로 성큼 올라버린 채소 가격을 확인하며 물건을 고르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최근 태풍·폭우 등 기상 이변 탓에 추석을 앞두고 농축산물 가격 고공 행진이 이어지자 정부는 2일 지난해 보다 1주일 앞당겨 ‘추석 성수품 수급안정대책’을 추석 전 3주간으로 확대 추진키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웅 김지섭 기자] “선물할 거래처를 줄이기는 그렇고 마냥 사비를 들이자니 지갑 사정은 빠듯하고…”

업계 순위로 한 손에 꼽히는 국내 제약사에 근무하는 강모(41)씨는 “추석을 앞두고 평소 거래량이 많은 병원들을 찾아 인사를 해야 하는데 물가가 많이 올라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 제약사들은 윤리경영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강씨와 같은 영업 사원에게 명절 선물 예산을 별도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강씨는 “주로 해 오던 과일 선물세트를 생각했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상품들 가격이 생각보다 크게 올라 선물 품목을 바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8)씨 역시 머리를 싸매고 있다. 경영 사정이 녹록하지 않지만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협력업체에 선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협력업체 리스트 가운데 선물을 꼭 해야만 하는 곳을 선별 중”이라고 했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에 최근 태풍과 폭우 등 기상 이변까지 겹치면서 주요 농·수·축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 제수용품 마련은 물론이고 선물 마련에도 비상이 걸렸다. 평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정(情)을 나누자는 취지인데, 연일 고공 행진 중인 물가 탓에 명절 선물 마련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2일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31일 기준 사과(쓰가루·10kg) 도매 가격은 3만8400원으로 전년 대비 26.8% 뛰었다. 도매 가격이 대폭 상승하면서 유통업계는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소매 가격도 20~30%정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본격적인 수확 시기가 왔지만, 지난 여름 폭염과 최근 태풍 여파 탓에 수확량이 준 데다 알 크기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봄까지 이어진 한파로 착화(着花)시기도 늦어졌다. 배(원황·15kg) 도매가격도 5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28.4% 올랐다.

그나마 축산물은 영향을 덜 받은 축에 속한다.

한우갈비(1등급·1kg) 소매가격은 5만2109원으로 2.9%, 돼지 삽겹살(국산 냉장·1kg)은 2만1424원으로 8.7% 각각 올라 상승폭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물가 고공 행진에 가계 부담이 커지자 주요 유통채널에서는 상품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추석 선물 세트로 꼽히는 사과·배 등 청과물은 생산지 출하 가격대가 지난해 추석보다 20% 이상 상승했다. 지난 4월 이상 저온에 따른 착화 불량 및 올 여름 폭염 등 전국적인 고온 현상 탓에 수확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축산품의 경우 인건비 부담 증가 등으로 전년 보다 10%가량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굴비 세트 역시 원물인 참조기 가격이 지난해 보다 15~20% 오르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자 ‘대목’을 맞은 유통업계 움직임도 바빠졌다.

현대백화점은 직원들을 청과물 산지로 보내 상품의 성장도, 모양 등을 수시로 살피고 있다. 구입 산지를 확대하는 한편, 사과와 배 이외에 멜론 등을 혼합한 선물세트를 전년 보다 20% 확대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역시 최근 인기가 높은 아보카도·망고 등 수입 과일 선물세트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자사 마진을 줄이거나 사전 물량 확보 등의 방법으로 물가 상승 여파를 최대한 줄여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다.

롯데백화점은 농가 출하두수 감소 탓에 산지 경매 낙찰가가 지난해 대비 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우는 사전 물량 확보를 통해 가격 상승 폭을 평균 2~3% 수준으로 최소화 했다.

사과, 배 등 청과물 역시 산지 출하 가격 상승 폭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홍삼·비타민 등 건강식품 및 굴비·옥돔 등 수산물 세트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한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햇과일로 꾸릴 청과 선물 세트, 인기가 많은 한우 프리미엄 선물 세트를 시세 오름세 보다 인상 폭을 낮추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선보인다.

대형마트는 사전 계약을 통한 가격 안정화와 상품 구성 다양화로 고객들의 부담 줄이기에 나섰다.

이마트는 설 직후인 올해 3월부터 물량 비축에 돌입해 한우 가격 인상을 최소화 했다. 굴비 세트의 경우 자체 마진을 줄이고 협력사와 조율, 가격 인상 폭을 10% 내외로 했다. 참조기를 대체할 수 있는 부세, 대서양 조기 등을 활용한 상품 개발도 적극 진행할 방침이다.

롯데마트는 신규 거래선 및 산지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 과일 선물세트 가격 유지에 노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는 13일부터의 진행되는 본 판매 기간에는 폭염의 영향을 적게 받은 국산 제주 감귤 및 황금향 선물세트와 키위·아보카도 등 수입 과일 선물세트를 기존 5% 수준에서 10% 이상으로 강화한다.

수산 선물세트의 경우 굴비 선물세트 품목을 축소하는 대신 대풍을 맞은 갈치 물량을 지난해 보다 20~30%가량 확대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농·수·축산물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을 대비, 물량 확보 등 사전 대비로 올 추석 소비자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