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8억인데 이주비 6억’…갭투자 조합원 전세금 골머리

by정병묵 기자
2018.05.04 05:30:00

강남 재건축 2만가구 이주비 비상
대출 규제로 조합원 이주비 ‘뚝’
1주택자 LTV 40%, 2주택자 30%
‘보증금 못 받을까’ 세입자 불안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보증금 빼주면 남는 게 없어요.” 재건축에 따른 이주가 시작된 서울 강남권 한 아파트 보유자 A씨는 요즘 돈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 5년 전 대출을 끼고 집을 사 전세를 놓았고 7월 중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형편인데 이주비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이미 받은 대출 규모가 큰데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돈줄이 아예 마른 상태”라며 속상해했다.

올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이주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철거가 시작되면 거주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주비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8·2부동산 대책으로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의 이주비 대출이 크게 줄면서 일부 조합원들은 대출금 상환은 물론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반환도 어렵게 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강남권에서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 이주가 줄을 잇는다. 이에 따라 이주비 문제가 본격 불거지고 있다.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구역 철거가 시작될 때 주택 보유자들이 살 곳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집단대출이다. 예전에는 조합을 통해 집단으로 대출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강남권 재건축시장에 돈이 몰리고, 사업비 규모를 줄이려는 조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개인이 담보대출 형태로 빌리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그런데 지난해 강화된 대출 규제가 재건축·재개발 단지 보유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기존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70%를 적용받아 거액의 이주비 대출이 가능했지만, 작년 8·2 대책 이후 대출 한도가 1주택자는 40%, 2주택자는 절반 이하인 30%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주택자는 투기지역 내 대출이 가구당 한 건으로 제한되면서 기존 대출이 있는 경우 이주비 대출을 아예 못 받는다.

문제는 올해 강남권 이주 예정 가구가 최대 2만여가구 규모로 ‘이주 폭탄’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비구역별 진행 상황과 인근 자치구의 이주 예정 물량 등을 보면 올 상반기 6149가구, 하반기 7065가구로 약 1만3000여가구가 이주할 계획”이라며 “대상 구역의 이주가 겹쳐질 경우 올 한 해에만 2만가구 가량이 멸실(집이 없어지는 것)돼 주택시장의 불안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4월 관리처분인가가 완료된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는 총 5040가구로 9월까지 이주를 마쳐야 한다. 이 밖에 강남권에서는 7월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 통합 재건축단지(2763가구) 외에도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1350가구), 9월 서초구 방배13구역(2911가구), 10월 송파구 잠실 진주(1507가구), 12월 서초구 한신4차(2898가구), 반포 주공1·2·4주구(2120가구), 강남구 삼성동 홍실아파트(384가구) 등 연말까지 1만9000여가구가 이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는 7월 2763가구가 이주하는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신반포23 통합 재건축 단지의 경우 조합에서 조합원들에게 알린 이주비가 생각보다 작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단지 전용 73.5㎡형의 이주비는 4억8000만원, 97.8㎡는 6억원 가량 책정됐다. 주변의 전용 85㎡짜리 중소형급 아파트 전셋값(8억∼15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 “예전에 재건축 이주비는 규모가 커서 단순 이주비라기보다는 사실상 인근 지역 재투자 용도로 쓰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돈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집주인들이 꽤 있다”며 “보통 강남권 거주민들은 학군이나 직장 등 입지 때문에 강남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강남이 아닌 곳으로 이사간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도 집주인이지만 세입자들의 불안도 크다. 재개발은 이주비가 임차인에게도 나오지만 재건축에서는 임차인에게는 이주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개포동 A공인 관계자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결정했는데 자칫하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마련해 주지 못하면 이사 시점을 맞추지 못해 애을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작년 정부 대출 규제와 서울권 대규모 재건축 이주가 맞물려 잡음이 예상되지만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대출 규제를 완화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문제가 심각해지면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들이 이사비 등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