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실체없는 수도권 규제완화 논란…지방도 스스로 체질개선을"

by박종오 기자
2015.11.30 06:00:00

수도권 규제완화, 정치논리 아닌 실체 논의해야
지방도 일방적 재정지원 기대 곤란
저성장 극복할 혁신 시스템 필요

△김동주 국토연구원장이 지난 20일 경기도 안양시 평촌 청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를 정치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대관령을 넘자.’

이 말은 여느 등산인 동호회 구호가 아니다.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급 교훈이었다고 한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수도권에 인구 49%(2010년 기준)가 산다. 산업과 문화 등 모든 기능이 밀집한 공룡 수도권을 바라보는 지방의 피해의식이 이 말에 절절히 녹아 있다. 1970년대 이후 40여 년 가까이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골자로 한 ‘지역 균형 개발’이라는 정책 목표를 감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틀을 깨겠단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지난 16일 취임 이후 처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수도권 규제가 도입된 지 30년 이상 지났다. 강산이 세 번 바뀐 것 아니겠냐. 접경지역 등 수도권에도 낙후된 지역이 많다. 수도권이라고 해서 이 상태로 지켜봐야 하는가. 어느 한쪽을 강제로 억누르기보다 주변 환경, 국제 정세 변화를 살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제대로 총구를 겨눴다. 1982년 제정한 이 법은 수도권에 공장·대형건물·공공시설·학교 등 인구 집중 유발시설이 멋대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문지기 구실을 한다. 이 규제를 풀어 젖혀 수도권에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도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연내 수도권 덩어리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서 과감하게 풀겠다”고 공언한 것과 손발이 맞는다.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장관 발언 직후 지방 언론에서는 일제히 ‘다시 꺼낸 수도권 규제 완화’, ‘잊을만 하면 도지는 규제 완화 망령’ 등의 사설이 쏟아졌다. 불과 두 달 전 비수도권 시·도지사와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촉구하는 서명부를 정부에 전달한 터였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한 서명에는 지역민 약 963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 완화 논란은 실체가 없어요. 뭘 어떻게 풀겠다는 건지 나온 것도 없는데 반대부터 하는 겁니다.” 김동주 국토연구원장은 이를 두고 이같이 일침을 놨다. 지난 20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국토연구원 집무실에서다. 올해 6월 취임 이후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다.

전임 김경환 원장(현 국토부 제1 차관)이 부동산시장 이론에 정통하다면 김 원장은 ‘지역 개발통’이다. (물론 김경환 차관도 2008년 서강대 교수 시절 KDI ‘지역개발정책의 방향과 전략’ 보고서에서 ‘수도권 규제의 재인식과 정책 전환’이라는 글을 쓰는 등 대표적인 수도권 규제 완화론자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한국지역학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본 위원, 지역생활권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전남 목포에 가보니 거기 거리에까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더라”며 “수도권 규제 완화 이슈가 이제는 정치적 아젠다(의제)가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지방의 핵심 논거는 ‘규제를 풀면 인적·물적 자본이 수도권에만 몰려 지역 경제가 침체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이익이 곧 비수도권엔 손해라는 ‘제로섬 게임’이다. 하지만 수도권과 인접한 충청권역을 제외하면 이런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수도권 규제 존치가 균형 개발이라는 당위성에 기대 지역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원장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실체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며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바탕으로 충분히 논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지역 균형 개발의 하나로 여기는 인식 전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의 권역 구분 현황 [자료=국토교통부]
앞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공장 총량제(3년마다 수도권에 허용하는 공장 건축 총량을 정해 제한하는 제도) 적용 대상을 연면적 200㎡에서 500㎡로 완화하는 등 입지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다. 2013년에는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공장 증설도 허용했다.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이자 팔당호 수질보전특별대책권역으로 묶였던 곳이다. 이로 인해 지역 불균형이 심해졌다는 지방의 불만이 빗발쳤지만, 이를 검증한 보고서나 자료는 아직 없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연구원에게 “그 부분을 우리가 한 번 다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규제 완화의 득과 실을 따져보자는 이야기다.



김 원장은 “기업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 규제들이 많다”며 “이런 부분은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낙후된 수도권 북부지역도 (규제 완화를) 조금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정부에도 쓴소리했다. 그는 “이제는 지역도 ‘우리한테 뭘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지역 발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유치,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특구(特區) 개발 등 일방적인 재정 지원만 바라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방법은 체질 개선이다. 종전 하향식 개발을 상향식으로 바꿔 자생적인 지역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지방대 육성을 위한 ‘BK(두뇌 한국) 사업’을 해도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미래는 사람 싸움입니다. 지역 스스로 고급 인력을 잡기 위한 문화·편의시설을 갖추는 등 정주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문화와 결합한 도시재생, 지식기반의 혁신 경제 생태계 조성 등을 들었다. 김 원장은 “과거 구미·울산 등 지역 거점 도시에서 대기업이 주도하는 전자·자동차·조선·석유·화학 사업 등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수평적 관계와 아이디어에 기초한 지역 혁신 시스템을 구축해 저성장 극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토연구원은 내년 하반기 세종시로 이전한다. 1999년 서울에서 지금의 안양 평촌 청사로 이전한 이후 17년 만이다. 정책 최일선에서 지역 개발 문제를 고민해 온 김 원장의 포부는 남달랐다.

“세종시로 이전하면 연구자로서 지역 현장과의 소통이 한결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직접 실천하겠습니다.”

1956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건축공학 학사, 동 대학원 도시계획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1년 국토연구원에 입사해 24년간 한 길을 걸었다.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한국지역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 1월 국토연구원 부원장, 올해 6월에는 원장에 올랐다. 현재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본 위원, 국토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김동주 국토연구원장 [사진=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