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말레이시아 페낭…동서양 다 품었네
by김미경 기자
2015.08.04 06:20:01
유럽풍 골목 지나니 수상가옥
영국 느낌 물씬 나는 조지타운 '골목'
담벼락마다 위트있는 벽화 가득차
수상가옥서 파는 열대과일로 더위 싹~
세계 길거리 음식 모인 '거니 드라이브'
쌀국수·바나나잎 주먹밥 일품일세
|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말레이시아 페낭 조지타운의 명물 벽화 ‘자전거를 타는 남매’ 앞으로 삼륜 자전거(트라이쇼)가 지나가고 있다. |
|
[페낭·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쉬운 퀴즈 하나. 여기는 어디일까. ‘우산가게’ ‘세차장’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기상 캐스터’란 것도 없단다. 누가 일부러 물을 뿌려대는 것처럼 1년 365일 국지성 호우 ‘스콜’이 잦기 때문이란다. 우산을 써도 신발에 양말, 바지는 물론 심지어 속옷까지 ‘홀딱’ 젖기가 일쑤. 그래서 현지인들은 비가 올라치면 가던 길을 멈추거나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힌트는 말레이시아 도시 중 하나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서양이 독특하게 몸을 섞은 팔색조 도시라 부른다. ‘눈치 백단’ 여행 고수는 짐작했을 터. 정답은 ‘페낭’이다. 이미 유럽인에겐 오래된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국내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재직 당시 세운 페낭교(13.5㎞)의 도시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말레이시아 본토와 페낭 섬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지금도 페낭2교와 함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 장맛비 냄새 진동하는 요즘 같은 밤. 술 한잔 마시면 차근차근 꺼내보고 싶은 여행지 ‘페낭’에 다녀왔다.
| 거니 드라이브 골목 노천에서 중고품을 파는 노점 |
|
‘타인의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 페낭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다인종·다문화·다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라서다. 과거 서양이 동양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 그렇기에 영국·포르투갈·네덜란드·일본 등 해양 강국은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번갈아 들락거렸다. 자연스럽게 동서양 교류가 이뤄졌고 말레이계는 물론 중국·인도·유럽 등 페낭 특유의 다문화가 형성됐다.
흔한 분쟁 없이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슬람이 국교지만 동남아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조지 교회’를 비롯해 전통적인 인도 무굴 양식의 ‘카타판 켈링 모스크’, 중국서 이주한 구(邱)씨 일가의 ‘쿠 콩시 사원’과 1890년부터 20년에 걸쳐 만든 ‘극락사’(켁록시)까지 기독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 등 4개의 종교가 나란히 자리한 페낭의 볼거리다.
이슬람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 새벽 5시 30분, 낮 12시 20분, 오후 2시 45분, 오후 5시 15분, 오후 7시. 계절이나 해의 길이마다 조금씩 유동적이기 때문에 이슬람사원에선 ‘아잔’을 소리높이 외친다. 낯설지만 경건한 외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 조지타운 내 아트 스트리트의 명물 벽화 40여개 중 하나. |
|
페낭의 대표 관광지는 ‘조지타운’이다. 1786년 영국 식민지 당시 세워진 유럽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지타운 구석구석에는 낡은 건물과 허름한 골목이 많아 참 매력을 느끼려면 걷는 게 가장 좋다. 담벼락과 건물에는 위트 넘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행자들이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 ‘아트 스트리트’다. ‘자전거 타는 남매’ 등 40여개의 벽화가 있다. 걷다가 지치면 트라이쇼(삼륜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제티 선착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면 된다.
유적지를 원형대로 보존한 페낭은 모든 것이 여유롭다.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여기고 순응해서다. 차는 느릿느릿 달리고 경적을 울리는 이 하나 없다. 조지타운 북동쪽 육지 끝 제티 수상가옥은 색다른 분위기다. 19세기 초 중국 이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만든 가옥. 각종 관광상품과 열대과일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서 있다.
페낭 중앙의 페낭힐도 필수 관광코스다. 해발 830m 산 위에 위치해 페낭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정상까지 가는 ‘후니쿨라’(궤도열차)를 이용하는데 많이 기다리지 않아 편하다. 소요시간은 약 7분. 날씨가 흐린 날이 많아 대부분 시내가 연무에 싸여 있지만 평지보다 평균 5도 정도 낮은 온도 탓에 바람은 시원하다.
| 페낭에서 꼭 맛봐야할 음식 가운데 주먹밥 나시르막(왼쪽 시계방향으로), 차 콰이 테오, 사테, 락사 |
|
페낭에 오면 입이 행복하다. 세계 여러 맛이 모인 그야말로 ‘음식천국’이다.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지 않는다면 팥소 없는 찐빵을 먹은 격. 거니 드라이브는 현지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페낭 제일의 노천 먹자골목이다. 타박타박 슬리퍼에 편한 옷차림으로 동네 호프집을 찾은 느낌이랄까. 우리네 포장마차가 발길을 붙든다. 대표 메뉴는 말레이시아식 짬뽕인 ‘락사’와 꼬치구이인 ‘사테’다. 그중 ‘차 콰이 테오’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이다. 넓은 쌀국수면에 돼지비계로 볶은 돼지고기, 새조개, 숙주나물, 계란, 부추 등을 넣어 특제 소스로 볶은 볶음쌀국수쯤 된다. 가격은 약 5~6링깃 정도. 우리돈으로 1500원에서 1800원 사이다.
바나나잎에 싼 ‘나시르막’도 꼭 먹어봐야 하는 현지 주먹밥. 소박한 한끼를 300~400원에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인 남자와 말레이시아 여자가 결혼해 일군 퓨전문화 ‘바바뇨냐’(프리나칸) 식당도 빼놓을 수 없다. 먹자골목 곳곳에 함께 자리한 과일가게도 구경거리다. 망고스틴이나 오렌지, 사과 등 현지 과일도 10~14개에 10링깃(약 3100원) 수준. 찾아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항에서 동쪽 해안도로를 타고 50분~1시간여를 달려 들어서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백사장이 나타난다. 페낭의 북동쪽에 위치한 해양휴양지 ‘바투 페링기’다. 개펄이 많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긴 힘들지만 해변을 따라 샹그릴라 라사사양, 골든샌즈, 홀리데이인 등 고급 리조트호텔이 줄지어 있다. 특히 라사사양은 골든샌즈와 함께 샹그릴라 소속 호텔로 부대시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장점. 어린이놀이터인 어드벤처 존부터 골프존까지 다 갖추고 있다. 리조트마다 전용 비치가 있어 백사장을 누비는 건 일종의 특권이다. 석양은 화려하다. 페낭의 밤이 낮보다 아름다운 이유다.
매일 해질녘 오후 6시면 야시장이 열린다. 샹그릴라 라사사양 앞에서 홀리데이 인 리조트까지 1㎞의 길가에 들어서 자정까지 불을 밝힌다. 전통공예품부터 시계, 액세서리 등 온갖 물건과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줄 현지선물을 마음껏 골라도 손해 봤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싸다. 조급함이 없어 머물고 싶고 마음 맞는 이와 꼭 함께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온전한 여행지로 남을 듯싶다.
페낭은 동서 14㎞ 남북 25㎞의 크기의 작은 섬(제주도의 1/3). 150만여명이 산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이어 말레이시아의 제2도시답게 북적북적하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이 늦다. 통화단위는 링깃. 환율은 1링깃에 약 300원꼴. 한류 영향으로 현지 환전소나 호텔에서 원화 환전이 가능하다. 이슬람 국가인 만큼 한국인이 좋아하는 술·담배는 비싼 편이다. 타이거 캔맥주는 대략 6링깃(약 1800원), 하이네켄은 8링깃(약 2400원) 정도다. 담배는 10링깃(약 3100원) 수준. 소주는 7000~8000원대로 1만원인 해외여행지보다 저렴하다.
=직항편은 없다.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는 게 보통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6시간 30분, 페낭공항까지 55분 정도 걸린다. 에어아시아가 ‘인천~쿠알라룸푸르’ 구간을 매일 2회, ‘쿠알라룸푸르~페낭’ 하루 10회 운항한다. 에어아시아 간편 환승 서비스를 이용하면 입국 심사 없이 환승할 수 있는 데다가 수하물 체크인도 한 번만 하면 돼 편리하다.
=하나투어에서 ‘페낭/싱가포르-샹그릴라 라사사양·페낭힐+조지타운+싱가포르시티투어’ 상품을 판매 중이다. 출발일은 싱가포르항공일 경우 이달 6일, 11일, 13일, 18일, 29일. 에어아시아는 7일과 12일이다. 홀리데이인호텔 투숙 기준 여행경비는 79만 9000원부터. 샹그릴라 호텔 투숙은 104만 9000원부터.
| 말레이시아 페낭 바투 페링기의 한 호텔 풀장에서 한 아이가 즐겁게 수영을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