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무료신문 천국?

by오마이뉴스 기자
2007.03.10 13:12:05

[해외리포트] 르몽드마저 가세... 유료지 큰 타격

[오마이뉴스 제공]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인 <르몽드>가 무료지 제작에 합세하고 나섰다. 지난달 <마뗑 플뤼스>라는 새로운 무료일간지가 첫 호를 발간했는데 볼로레 그룹과 르몽드 합작으로 만들어진 신문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첫 호로 60만부를 뽑은 <마뗑 플뤼스>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1주일에 5일 발간되는데 35만부가 배포되는 파리지역을 비롯해서 프랑스의 60여개 도시에 배포된다. 이 신문을 위해 15명의 기자들이 투입되었고 이밖에 일간지 <르몽드>와 주간지 <꾸리에 엥테르나쇼날>에 게재된 기사 중 일부를 선택해 싣는 시스템을 갖는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2년 2월에 시작된 무료일간지 <메트로>가 의외의 성공을 거두자 너도나도 무료일간지를 다투어서 만들고 있는데 <메트로>가 나온 지 한 달 후인 2002년 3월에 <20분>이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몇 달 전에 가세한 <디렉트 스와> 그리고 신생아인 <마뗑 플뤼스> 까지 합치면 현재 파리에서 배포되는 무료지는 4개나 된다.

▲ 파리에서 배부되는 무료일간지 ""메트로"" ""마뗑 플뤼스"" ""디렉트 스와"".

참고로 2002년에 87만부로 시작된 무료일간지가 2005년에는 159만부로 증가했고, 무료지의 판매실적(결국 광고수입)도 2002년의 1천만 유로에서 2005년 7800만 유로(잠정수치)로 증가했다.



프랑스, 특히 파리에서 이렇게 무료지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내 어디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아니면 지하철 입구에서 거의 강제적으로 나누어주는 신문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더욱이 한 번 읽어보니 내용도 충실한 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광고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층들에게 광고에 의지하는 무료지가 어필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은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무료지의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자 각 신문마다 내용을 독자의 구미에 맞도록 신경을 쓴다든가 아니면 신문의 편집스타일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든가 등등 계속 머리를 싸매고 있는 형편이다.

무료지의 갑작스런 팽창으로 무료지의 광고보급에도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0분>이 얼마 전에 < RNG(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것도 공짜인 것은 없다'의 약자)>라는 경제주간지를 구상했었으나 원하는 대로 광고주를 구하지 못해 주간지 발간계획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광고주도 더 많은 판매수를 올리는 무료지로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많은 판매수를 자랑하는 <메트로>는 창간 3년만인 2005년에서야 처음으로 30만 유로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6년에도 <메트로>는 흑자가 예상되는데 <20분>은 아직 흑자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 프랑스 대표일간지. ""르몽드""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



그렇지 않아도 판매실적 부족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유료일간지는 쏟아지는 무료지로 인해 다시 한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르몽드>는 2004년에서 2006년간 1백여명의 종업원을 줄여야 했고 <리베라시옹>도 2006년도에 15%의 인원을 감축했다. <프랑스 스와>의 경우는 50% 이상의 인원감축이 행해졌으니 '기자국내조합'이 작년 6월 29일자 글에서 현재 프랑스 유료일간지의 건강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작년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리베라시옹>은 결국 2006년 6월 29일 편집장인 세르주 쥘리에게 책임을 묻고 사임케 했으며 후임으로 11월 20일 로랑 죠프랭을 위임하였다. 동시에 <리베라시옹>의 대주주인 호칠드는 신문을 살리기 위해 5백만 유로를 새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면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작스럽게 발달한 프랑스 신문산업은 안정성을 획득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해 1945년부터 1960년까지 15년간 새로 창간된 신문의 50%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현실을 빚었다. 그리하여 1946년에 203개였던 신문의 종류가 1972년에는 89개로 감소되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도입, 월간지나 정치잡지, 지방신문의 확대로 일간지의 발행부수가 점차적으로 감소되는데 1973년에 프랑스 일간지 구독 인원이 1000명당 221명이었다면 1997년에는 150명으로 감소되는 현상을 낳는다.

예를 들어 1973년에 15세 이상의 성인 중에서 하루에 일간지를 읽는 독자가 100명중 55명이었다면 1998년에는 100명중 40명중으로 감소했다. 1975년에서 1998년 사이에 일간지의 총 발행부수는 2백만부가 감소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료지의 기반은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난립하는 무료지, 세대의 변화에 맞추어 날로 변해가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특히 가정 일상사에 깊숙이 침투해있는 인터넷과 일간지의 인터넷판의 영향으로 유료일간지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반면에 예외도 존재한다. 80만부라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자랑하는 지역신문 <우웨스트-프랑스>와 <오쥬르디 엉 프랑스>, 그리고 그의 파리판 신문인 <르 파리지엥>은 현재 시름시름 앓고 있는 신문 중에서 유일하게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신문이다.

<오쥬르디 엉 프랑스>는 2005년 14%의 성장을 기록하였고 <르 파리지엥>도 45만부를 발간함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잘 통과하고 있다. 이들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신문의 편집스타일이 판매부수의 가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 고급성과 다양성 등을 과감히 추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료지 <20분>의 50% 주인이기도 하며, 프랑스 서부지역에서 브르탄뉴, 바스 노르망디, 루와르 지역의 12개도를 장악하고 있는 <우웨스트-프랑스>는 지역신문 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데 1976년 이후로 프랑스 신문중에서 계속 발행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도에 <우웨스트-프랑스>의 하루 발행부수는 78만1330부로 이것은 프랑스 국내 언론의 10%와 프랑스 지역언론의 14%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2005년도에 <르몽드>의 발행부수가 33만 7천부, <르 피가로>가 34만 2천부였음을 참조하면 <우웨스트-프랑스>는 이 두 주요신문의 발행부수를 합치고도 남는다.
▲ 파리지역신문 ""르 빠리지엥""과 주간지 ""꾸리에 엥테르나시날"". 둘 다 위기를 잘 견디고 있는 신문이다.



<우웨스트-프랑스>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저렴한 가격인데, 한 부당 70쌍팀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싼 신문이다. 참고로 르몽드는 1.3유로, 리베라시옹은 1.2유로이다. 이 가격은 지난 6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

이 신문의 부주필인 다니엘 플로그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몇 년 동안은 이 가격을 유지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1898년 제3공화국 시절에 트로쉬 신부에 의해 창간된 <우웨스트-프랑스>는 아직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모든 이들의 정보화, 지식화'라는 토대하에 신문의 내용을 마을 일에서부터 읍, 구, 시, 국가, 국제사항까지 폭넓고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우웨스트-프랑스>에 투입된 기자 수만 해도 550명으로 모두 자질이 높은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각 지역과 마을마다 2500명의 아마추어 통신원을 두고 있는데 이들이 매일 올리는 뜨끈한 기사들로 인해 신문의 질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6일간 발간됐던 이 신문은 1998년부터 일요판인 '디망수(일요일이란 뜻)'를 발간함으로써 현재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주민과 가까이' '고향소식 전달' '주민들의 민주주의 삶 도와주기' 등을 모태로 지금까지 1세기를 지탱해 온 <우웨스트-프랑스>는 그동안 독자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신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15년 전에 개설된 '포럼'란에서 독자들은 마을 문제나 시 문제, 국가 중요사안이나 국제사항에까지 두루 토론할 수 있으며 최근에 개설된 온라인판으로 독자들의 참가는 더욱 활발해졌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우웨스트-프랑스>는 1990년부터 무영리협회인 '인간적인 민주화의 원칙 지원을 위한 협회'에 가입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과 현재의 사장 위텡씨까지 모두 월급제이고 남는 이익은 다시 신문에 재활용되는 시스템을 갖고부터 신문의 독자성과 경쟁성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을 갖는 신문으로 프랑스에서는 유일한 신문이고 세계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신문의 독립과 다양성, 신용'등을 신조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의 존중이라는 초기 창조자 휴머니스트 트로쉬 신부의 이념을 이어받아 각 개인을 존중하자는 편집방침을 고수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혐의자라도 실제로 형이 선고되지 않는 한 수갑을 찬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신문이 주로 다루는 흥미위주의 잡보도 제재하는 등 고유한 노선을 지키고 있다.

휴머니즘과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우웨스트-프랑스>는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주저치 않고 있는데 단지 언론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 한해서이다. 벽보 홍보물, 텔레비전, 라디오, 광고 등에 손을 대고 있는 이 신문은 얼마 전에는 프랑스 서부지역에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지역지 3개를 구입하여 이전의 독립성을 보장해 준 바 있다.

이 외에 신문의 위기를 잘 견뎌내고 있는 신문 중에 특수신문을 들 수 있는데 일간 경제지인 <라 트리뷘>과 <레 제코>, 일간 스포츠지인 <레큅프>, 주간 정치풍자신문 <르 캬나르 앙세네>(올 2월에 주당 50만 부 정도 발간), 주간시사지 <꾸리에 엥테르나쇼날>(2000년에 12만부 발간), 월간지 <몽드 디플로마&46945;끄>(2000년에 19만7천부 발행) 등이 그 예에 속한다.

상당히 양호한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는 주간지로는 50-60년대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롭세르바퇴르>(1950, 지금은 <누벨 옵세르봐퇴르>). <렉스프레스>(1953)와 그 이후에 발간된 <르 뽀엥>(1972), <파리 마치>, <에벤느망 드 줘디>(1984), <마리안느>(1995, 2000년도에 20만4천 부수 발간) 등으로 이들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1997년에 주간지와 월간지의 발간 총수만 해도 1507개였고 프랑스인의 90%가 적어도 한 개의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는다고 밝혔다. 이것은 1967년에 61%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한 수치이다.

이 밖에 노년을 위한 잡지 <노트르 땅>이 1997년부터 계속 1백만 부수 이상을 발간하는가 하면 스포츠 잡지, 여성잡지, 스타 가십잡지, 지역잡지, 여행잡지등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