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경계를 벗어난 이들의 여정, 관념의 균열을 그리다

by김보영 기자
2024.08.05 06:17:13

제11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 심사위원 리뷰
두산아트센터 연극 ''당연한 바깥''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안경모 연출] 연극 ‘당연한 바깥’(연출 송정안, 7월20일~8월4일 두산아트센터)은 금단선을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탈법적 경로를 통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다뤘다. 월경(越境)을 기획하는 브로커부터 국경경비대원, 이들을 이용하는 국정원 직원들과 탈북민을 상담하는 의사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여자’가 탈북 과정에서 딸과 헤어진 사건으로 시작된다. ‘여자’는 국정원 직원에게, 딸은 중국 공안에게 인계됐다. 북한과 중국이 외교상 탈북 문제에 예민하기에 엄마와 딸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정원 직원은 ‘여자’에게 대한민국 국민이라 꾸미자고 제안한다. 이에 ‘여자’는 오래전 납북 어부의 딸로 북한에 억류됐다가 딸과 함께 탈출했다며 기자회견까지 연다.

하지만 이야기는 반전한다. 생존을 위해 딸과 함께 탈출했다고 주장한 ‘여자’는 사실 북한과 중국을 넘나드는 밀수꾼에다 탈북브로커였다. 국정원은 이 ‘여자’를 이용해 국군포로 송환을 기획한다. 한국전쟁으로 북한에 억류돼 살아온 국군포로는 비공식 형태의 송환을 거절했다. 그러나 줄곧 잊힌 존재로 살았던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방법은 달리 없다. 결국 할아버지가 된 국군포로는 접경지역에서 아내와 몰래 상봉한 후 탈북을 결정한다.

반전은 계속된다. 국군포로의 손자인 국경경비대원 또한 브로커 ‘여자’를 돕는 탈북협력자임이 밝혀지고, ‘여자’의 딸도 실은 국경경비대원의 동생임이 밝혀진다. 얽히고설킨 관계와 거짓에 의한 월경행렬은 결국 북한 보위부에 발각된다. 탈북민 심리상담으로 ‘여자’를 맡았던 의사가 ‘여자’의 도움으로 월북했다가 체포됐기 때문이다. 탈북민이었던 이 의사는 북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려 경계선을 넘었다. 그렇게 극은 의사의 월북을 묵인한 국정원 직원의 진술, 생존을 위해 망명을 신청한 국경수비대원, ‘여자’의 노하우에 다시 생환한 의사가 상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선인과 악인의 가치 판단,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속에서 체제나 이념은 설 자리가 없다. 생존을 위해 거짓은 일상이 되고 그 거짓 속에 일상이 이어져, 어느새 진실과 거짓의 경계 또한 지워진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선택, 가족에게 도리를 다하려는 이들의 행동에 국가가 규정한 법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법은 분명 인간의 사회활동을 위한 합의일 텐데,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제약하고 권력과 체제를 위해서만 기능한다면 법이란 무엇일까? 경계가 없는 땅, 강, 바다를 푯말과 장벽으로 구분한 국경은 무엇일까? ‘당연한 바깥’은 이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진 바깥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우리의 관념을 균열한다.

실연의 한계는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큰 스케일에 비해 극작술은 언어행동이 주를 이루는 대화극에 가깝다. 긴 횡단무대는 분단의 상징으로 보이나, 인물의 동선을 단조롭게 만든 원인이 됐다.

그럼에도 분단과 세계질서에서 밀려난 디아스포라들을 조명해 커다란 균열을 그려냈다. 나아가 균열보다 더 큰 차원이동이 느껴진다. 원 안에 놓인 동전을 원 밖으로 옮기려면 원을 깨야 한다. 그런데 동전을 위로 들어 올려 차원을 바꾸면 균열보다 더 큰 자유가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만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국가나 체제가 만든 국경, 법의 차원보다 훨씬 높은 차원일 것이다.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연극 ‘당연한 바깥’ 공연 사진. (사진=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안경모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