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주주행동주의, 이제 멀리 볼 때
by송길호 기자
2024.04.01 06:15:00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주주행동주의가 붓물을 이루고 있다. 주주행동주의 타깃이 된 기업 수로 보면 우리나라는 작년에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올해 주총에서도 주주환원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캠페인과 주주제안은 예상대로 활발했다. 한 기업에 복수의 행동주의펀드들이 동시에 캠페인을 하는가 하면 개인주주가 연합한 캠페인도 늘어나는 등 스펙트럼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가 응축되는 시장과 달리 주주행동주의를 보는 국내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주주행동주의를 언급할 때 적대적 인수합병(M&A)에나 쓰는 공격(attack)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부정적 인식은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주주행동주의의 행태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주주행동주의에서 타깃기업의 장기 성장에 관한 내러티브를 찾기 힘들다. 기업의 장기 성장과 가치 제고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지만 정작 행동주의 캠페인에서 장기성장 전략 스토리는 찾기 힘들고 단기적인 주주환원 확대 요구만 부각된다.
실제 작년 주주제안에서 이사 선임과 주주환원 요구가 전체의 3분의 2를 넘는다. 이런 요구가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스토리와 연결되지 않는다. 행동주의가 기업 투자 기반을 훼손한다는 오해와 부정적 시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스튜어드십코드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주주활동이 지속가능 성장과 기업의 중장기 가치 제고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주환원과 어떻게 연계돼야 하는지 모호하다. 기업 성장 스토리 없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만으로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 주주행동주의가 적대적 M&A의 DNA를 가진 아이칸(Ichan)류와 같은 헤지펀드 주주행동주의의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성장과 주주환원, 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내러티브가 기업과 장기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밸류업정책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보완하는 기업의 장기 주주가치 정책으로 평가된다. 스튜어드십코드에 부족한 장기 성장 관점을 밸류업정책이 보완한다. 일본의 밸류업정책은 경영진이 아닌 이사회가 중심이 돼 성장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고 소수주주와 충분히 소통해 주주가치 경영을 중장기적으로 실현하자는 것이다. 밸류업정책을 통해 기관투자가들은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 개선뿐 아니라 연구개발(R&D), 인적자본 개발 등 장기 성장전략에 관해 이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자연스럽게 장기적 관점에서도 주주행동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밸류업정책을 통해 기업 성장을 고려하는 장기적 관점의 주주행동주의의 성장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단기주의를 극복하고 기업과 소통하는 장기적 파트너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주행동주의 생태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장기투자를 하는 우량 기관투자가들이 밸류업 기반의 행동주의 투자전략을 채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연기금의 역할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위탁운용사가 밸류업의 주체가 되고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기업과의 대화와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 주주활동을 재량적으로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우량의 공적 기관투자가가 일본만큼 두텁다. 이들이 GPIF처럼 자유롭게 밸류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현재 시행하고 있는 ESG 위탁운용 유형을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단, 높은 지배주주 지분과 매출기반의 성장 관행이 밸류업정책의 실효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처럼 기업의 밸류업 전략은 이사회 주도로 주주와 소통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밸류업정책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촉진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고, 이렇게 강화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 지배구조 개선과 장기적인 주주가치 경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