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 450원, 출국 1만원…'그림자 세금' 손질

by이지은 기자
2024.01.18 05:00:00

91개 부담금 원점 재검토…20년새 징수액 3배↑
올해 24.6조원 전망…86.6% 기금·특별회계 귀속
전문가들 "재원 감소 종합대책 마련해야" 제언
국회 동의도 난망…정부 "필요한 부분 보전해야"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김은비 권효중 기자] 무심코 구매한 영화티켓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격 근처에 ‘영화발전기금 3%’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가 2007년부터 관객을 대상으로 징수하고 있는 영화입장금 부과금이다. 영화 산업 진흥을 위한다는 취지지만, 종사자들이 아닌 관객들의 쌈짓돈을 관행적으로 걷어간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여권 발급자에게 국제교류기여금 명목으로 1만5000원(10년 유효 복수여권 기준)을 부과한다. 일부 부유층에게 기부금을 걷겠다는 의도로 1991년 도입된 제도가 연간 2000만명 해외여행객 시대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2세 이상 출국자를 대상으로 1만1000원씩 징수하는 출국납부금 역시 1997년부터 운영 중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정부가 그간 기업과 국민에게 걷어온 이같은 법정부담금에 대해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91개에 달한 부담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존속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준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며 구조조정에 힘을 실었다.

부담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이 특정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담금 관리 기본법’에 따라 걷는 돈이다.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점에서 세금과 비슷하지만, 납부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내는 경우가 많아 조세 저항이 크지 않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국회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기금과 특별회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수입에 귀속돼 사업비로 쓰긴 쉽다.

지난해 9월 기재부가 발간한 ‘2024년 부담금운용종합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24조6157억원의 부담금이 징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담금관리 기본법이 제정됐던 2002년(7조4000억원)에 비하면 20여년 사이 세 배 이상 액수가 불어났다. 이중 86.6%가 중앙정부 기금(18조146억원)과 특별회계(3조2956억원)에 귀속될 예정이다.

정부도 부담금 제도를 관리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왔다. 부담금관리 기본법에 따라 신규 증설을 억제하고, 소관 부처가 해마다 운용 현황을 평가했다. 그러나 특정 부담금을 폐지하게 되면 당장 재원 조달에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부담금 중 20년 이상 유지된 항목은 전체의 73%( 67개)에 달한다.



작년 나라곳간은 역대 최대(약 59조1000억원) 세수 결손에 예산 긴축 기조까지 유지되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상태다. 이런 환경 속 보조금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재정적 해법을 찾는 게 관건으로 떠오른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에도 부담금을 정리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정리하기 어려웠던 건 부담금에 다 이유와 용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줄어드는 수입을 어떤 재원으로 마련해야 할지 종합적으로 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담금을 개편한다고 해서 멀쩡한 부담금을 없애고 당장 필요한 돈을 세금으로 돌리면 조세저항이 세서 어려울 것”이라며 “그간 정부가 부담금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해오긴 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재구조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봤다.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 부담을 개편하기 위해서는 소관 법률인 부담금관리 기본법과 징수 근거가 명시된 개별 법률을 모두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부담금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두고 “4월 총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꺼내 든 총선용 정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담금 개편은 해당 항목의 지출을 줄이든가 지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항목에서 일반회계에서 돈을 주는 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법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올해 당장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부라도 시행이 되면 수입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전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