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동료에 1천번 전화해도 속수무책…직장 내 보호장치 '전무'
by이영민 기자
2023.09.14 06:30:00
[신당역 1주기, 우리 일터는 아직 불안하다]③
직장에서 피해자 쉽게 접근해 피해 커질 우려↑
고용주 스토킹 예방 의무는 자율에 그쳐
"처벌만큼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힘써야"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신당역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정부는 직장 내 스토킹을 막기 위한 관련법 제정과 피해자 보호를 공언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스토킹 범죄는 직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사후적 처벌에서 나아가 사업주에게도 스토킹 예방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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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지난달 2일부터 9일간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1명(8%)은 회사에서 스토킹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80명은 절반(52.8%)은 스토킹 수준이 심각했다고 답했다.
직장 내 스토킹은 2차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여성 직장동료에게 1000번 넘게 전화하면서 스토킹한 50대 남성을 구속송치했다. 지난 8일에는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의 유족이 피해 사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공분을 모았다. 이은총씨는 지난해 7월 17일 인천 남동구 아파트 복도에서 직장동료이자 전 연인인 설모(31)씨에게 흉기로 살해당했다. 피해자의 사촌언니는 “은총이를 포함해 대부분의 스토킹 살인이 접근금지 명령 기간에 일어나는데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할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의 김세정 노무사는 “현행법은 사업장 내 스토킹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고용주에게 피해자 보호와 공간분리, 정보유출 등에 대해 처벌하거나 책임을 묻는 규정이 없고 자율적으로 내규를 통해 관리하게 하고 있다”며 법의 한계를 짚었다. 또 “전체 성범죄에서 직장 내 스토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한정된 공간과 업무 관계에서 생활이나 개인정보가 많이 노출되는 특징상 추가 범죄나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직장 내 스토킹에 한에서는 사업주의 예방책임을 법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2021년 3월 스토킹처벌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에 그치던 스토킹 처벌을 강화했다. 올해 7월 18일에는 스토킹방지법을 시행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피해자 법률구조와 주거 지원, 자립 지원 서비스 제공 등의 책임을 부여했다. 하지만 두 법은 사업주에게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는 것 외에 직장 내 2차 가해나 제 3자에 의한 피해를 막을 적극적인 책임을 규정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만큼 예방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외국은 ‘안전휴가법’을 도입해서 근로자가 스토킹을 당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국내 법률에는 이런 보호장치가 빠져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스토킹 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법익은 범죄 예방”이라며 “고용주의 피해자 보호와 직원 정보관리를 의무화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GPS를 지급해서 가해자가 일정 반경에 들어오면 경고하거나 구속하는 방식으로 가해자 감시와 재범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