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전자·화학·통신 '선택과 집중'..'초우량 LG' 키워낸 혁신 23년

by경계영 기자
2018.05.21 05:35:00

장기적 안목의 투자 집념
위기를 기회로 만든 승부
트렌드 읽는 열린 시야

2011년 1월 구본무 LG 회장이 글로벌CEO전략회의에서 최고경영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LG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1995년 회장 취임사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95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할 때부터 제2의 경영혁신을 통한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의 발돋움을 강조했다. 그가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무고(無故) 승계한 이유는 세대 교체를 통해 미래 사업을 주도하도록 한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취임하는 구 회장에게 “경영혁신은 끝이 없다”며 혁신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 LG가 세계적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현재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동시에 10년, 20년 후에도 지속 성장할 사업을 선택해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그룹 성장을 이끌어갈 사업으로 전자와 화학, 통신,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LS그룹은 2003년, GS그룹은 2005년 각각 계열분리했지만 2003년 매출액에 일괄 반영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동안 구 회장은 일단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고 도전해 끝내 달성했다. ‘집념의 승부사’라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쯤이었다.

대표적 사업이 2차전지 부문이다. 구 회장은 그룹 부회장 시절인 지난 1992,년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고자 방문한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서 충전으로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처음 접하고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2차전지 샘플을 직접 가져와 계열사인 럭키금속에 이를 연구토록 했고 1996년엔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했다.

수 년간 투자에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회사 안팎에선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2005년 2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냈을 때도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며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임직원을 다독였다.

결국 LG화학은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했을 뿐 아니라 전기차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도 글로벌 선두로 올라섰다. 지금은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30여개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지난해 말 기준 42조원에 달한다.

세계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한 LG디스플레이를 만든 것도 구 회장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정부가 주도한 ‘빅딜 논의’로 반도체사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했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을 떼어내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별도로 설립했다.



세계적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필립스로부터 16억달러의 자본을 유치해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기초 기술력을 보유한 필립스와 응용기술이 강한 LG가 힘을 합쳐 자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전 세계 LCD 시장의 수요 급증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8년 필립스와 결별한 이후엔 더욱 과감한 투자가 이어졌다. 그중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을 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개발이 백미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TV, 모니터 등에 쓰이는 9인치 이상 대형 LCD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31분기 연속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초로 대형 OLED 패널도 양산하며 OLED TV 시장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구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에는 개인이동통신사업(PCS)에 진출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미래 정보화시대 통신산업을 선도하려면 이동통신사업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업권을 획득한 그 회장은 그해 6월 LG텔레콤을 출범했고 2000년 유선통신사업체 데이콤 인수, 2010년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 합병 등으로 유무선 통합 LG유플러스를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그동안 LG유플러스는 1998년 매출액 1조원에서 지난해 12조원으로 성장했다.

구 회장은 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3G보다 5배 빠른 4G LTE 시대를 맞아 LG유플러스는 당초 3년 계획으로 잡았던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 만에 끝냈다.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부터 과감하게 투자할 것”을 독려한 구 회장 덕분이었다.

LG유플러스는 후발주자임에도 LTE 투자에 힘입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LG유플러스는 유·무선 통신을 넘은 집·공공·산업 분야 등 삶 전반을 네트워크로 잇는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LTE보다 50배 빠른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LG그룹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우선 2003년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처음으로 LG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한 LG는 자회사가 사업에, 지주회사가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에 각각 전념하는 선진적 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 포트폴리오 역시 바뀌었다.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2000년 LG벤처투자, 2000년 아워홈,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 2007년 LG패션 등을 차례로 계열 분리해 그룹 사업을 전자·화학·통신으로 단순화했다.

특히 2005년 1월엔 창업 1세대인 구인회 창업회장과 허만정 공에서 시작해 2세대인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고(故)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 구본무 LG 회장과 허창수 GS 회장에 이르기까지 57년간 3대에 걸쳐 유지된 동업을 ‘아름다운 이별’로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