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 회장 "노사 갈등 이대로 가면 멕시코에도 100% 밀린다"

by신정은 기자
2018.04.09 05:05:00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특별 인터뷰]②
韓, 세계 자동차 생산국 순위 하락 불가피
외투기업 보는 시각 바꿔야 고용·투자 늘어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이 3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1980년부터 20여년간 산업 정책을 만드는 공직 생활을 해오다 10년 전 산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건 5년 전인 지난 2013년부터다. 김 회장은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취임 이후 곧바로 우리 자동차 산업의 위기 조짐을 발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환율은 물론 대외 환경이 한국에 유리했었지만, 2014년부터는 국내 생산이 정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메이드인코리아’ 자동차가 사라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우리 자동차 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올해는 ‘한국GM 사태’ 등이 발발하면서 한계가 결국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 집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나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은 한국GM 협력사들이 생존권을 호소하며 거리로 나온 날이자, 한국GM 노동조합이 파업권 확보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던 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생산경쟁력 측면에서 위기 국면에 봉착했다”며 “그 과정에 현재의 GM 사태가 발생했고, 하강국면에서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멕시코, 인도 등 개도국에 계속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노사 관계가 협력 구조로 바뀔 수 있도록 변해야 하고, 정책적으로도 환율, 규제 완화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예전의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한다. 국가 차원에서, 또 기업차원에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힘줘 말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 일문일답.

“취임 후부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 조짐이 보였다. 그전엔 환율 측면에서 우리가 유리했고, 후쿠시마 사태 등으로 일본 경제가 침울해 상대적으로 한국 투자도 많이 이루어졌다. 중심이 우리 쪽으로 오는 듯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국내 자동차 생산이 정체됐다. 이건 큰 조짐이었다. 현대·기아차가 해외에서 많이 생산해서 판매하는 게 마치 우리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시현상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려면 메이드인코리아 자동차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것이 고용과 부가가치로 이어져야 한다. 해외 생산·판매와는 다른 거다. 그렇게 보니까 우리 자동차 산업이 쉽게 풀리지 않을 거 같았다. 실제로 그때부터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량이 계속 떨어졌다”

“우리 자동차 생산량이 2016년 인도에 밀려 5위에서 6위로 떨어졌고, 현재 상황으로 볼땐 올해는 100% 멕시코한테 밀린다. 지난해 멕시코와 격차가 4만6000대 수준으로 좁혀졌다. 올해 1분기 우리 자동차 내수·수출 여전히 부진했다. 이대로 가다간 7위로 떨어지는 건 불보듯 뻔하다. 자동차 산업은 한번 밀리면 되찾기 쉽지 않다. 수요가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다. 하강국면을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개도국에 계속 밀린다. 이제는 일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우리가 소형차가 위주기 때문에 개도국은 우리부터 치고 올라가려고 할거다. 그들이 바로 뒤에서 바짝 따라오고 있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곧 추월 당할 거다.”

“한국의 IMF 구제금융 이후 완성차 업체 5개사 중 3곳이 외국기업 투자를 받게됐다. 한국이 글로벌 업체의 위탁 생산 기지가 된 것이다. 주도권을 잃은 것 그 자체로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생산량이 줄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GM 노동자 입장에서는 물량을 안주니 생산을 못하는거 아니냐고 억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위탁 생산기지가 되면 글로벌 본사의 여러 국가 공장과 경쟁이 되는 거다. 르노삼성이나 쌍용자동차, 한국GM 등 모두 본사에서 물량을 배정받는 구조인데, 본사는 가장 생산성이 좋은 곳에 물량을 배정한다. 다른 나라에서 잘 생산하고 있는 제품을 가져오려면 우리의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우리 비용구조가 경쟁력이 있는가 돌이켜보면 답이 나온다. 그 문제가 우리한테 있다고 인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생태계가 좋다는 게 강점이다. 한나라에 이렇게 많은 부품업계가 모여있고, 고급 인력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물류가 선진화되어 있는데다 IT산업도 발전돼 미래 산업의 잠재력이 크다. 생산성만 해결되면 우리 자동차 산업은 부가가치를 훨씬 높일 수 있을 거다. ”



“‘먹튀’라는 단어가 부정적 어감이 큰 건 사실이다. 금융산업은 차라리 ‘먹튀’가 쉽다. 그러나 제조업은 현지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많은 투자를 진행한다. 고용 유지 비용에 기여했기 때문에 금융자본과는 다르게 봐야한다. 외투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고, 우리는 고용으로 그것을 보상 받는다. 수익을 주지 않는다면 고용도 없는 거다. 신중하게 국제적인 논리 속에서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다국적 기업이 갖고 있는 기본적 속성을 비난해서는 답이 없다.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면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어렵다’는 인상만 심어줄 수 있다. 그러면 국가적 브랜드 가치도 떨어진다. 책임을 묻되 사업하기 좋은 매력있는 나라를 만드는게 중요한 과제다. 제너럴모터스(GM)는 국내 최대의 고용과 투자를 진행한 외투 기업 중 하나다. 이런 사례가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지만 더 크게 보고 신중했으면 좋겠다. GM은 외투기업 특성상 기술과 자본을 투자한 만큼 거기에 대한 대가를 연구개발(R&D)비용이나 이자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회수한 것이다. 물론 그 규모가 과다하다면 실사를 해서 따져봐야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수익을 본사로 가지 않는다면 투자도 안한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관행에서 보자. 만약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면 우리 기업이 시간과 인력, 자본 등을 투자한 것인데 온전히 미국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언론에서 이를 지적하는건 좋은데, 학자나 정부 당국자가 국제적인 스탠다드를 뒤로한 채 너무 국소적인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다. 이번 GM사태가 우리가 외투 기업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에 대한 점검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역사적 교훈이 될거다.”

“고비용구조를 해결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한국GM 임금은 평균 8700만원 수준인데 노조가 3000만원 주식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되면 일인당 급여가 1억이 넘는다. 한국GM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게 경차인데, 단가가 낮은 차를 생산하면서 인건비가 너무 높다. 그렇다보니 GM이 군산공장을 ‘고비용 저효율’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국 공장 생산성이 거의 미국 본사와 같은 수준이다. 2009년 금융위기때만 해도 한국GM은 가장 효자 노릇했다. 그런데 지금은 빚덩어리가 됐다. 물론 ‘그때 돈을 많이 벌어줬는데’ 생각하면 억울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 상황으로는 GM의 48개 공장 중에서는 유지가 어렵다. 비용 낮추면 GM 본사가 빚을 지고, 앞으로 조금더 부가가치가 있는 차를 배정해줄 것이고, 그럼 효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두 번째는 생산 유연성인데, 미국 본사는 4년 단위로 임금협상을 하는데 우리는 매년 임금협상을 한다. 너무 소모적이다. 자동차는 4년마다 신모델이 나오는 만큼 협상도 장기적으로 해야한다. GM본사갔더니 한국은 국제 회계법에 따른 숫자를 믿지 않냐고 물어보더라. 3년도 좋다. 만약에 그전에 적게 받았다면 나중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장기적 안전성을 확보하면 된다.

노동 유연성도 떨어진다. 미국 등 선진국은 총량을 정해놓고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한다. 근데 우리는 집단적인 형태다보니 시간외 수당도 너무 많다. 자동차는 이제 수요 예측이 어렵다. 수요에 맞춰 그때그때 생산을 해야하는데, 우리는 노조와 협의를 해야하다보니 재고가 있어도 생산하고, 주문이 밀려도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노조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변했고, 강성이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노조도 최근 변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은 구제금융 이후 노동개혁을 통해 자동차 산업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우리도 변화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도 변하면 충분히 발전 가능하다는 의미다.

“큰 메시지다. 그동안 고용과 관련된 일이다보니 노사관계에 정치적 영향이 컸다. 그런데 이제 청와대가 금호타이어 사태를 중립적이고, 경제적 논리로 풀겠다고 선언했다. 즉, 국제적인 스탠다드에 맞추겠다는 거다. 그동안 완성차 노조의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더 어려운 부품업체가 나타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임금격차는 커졌다. 노조가 조금 더 양보 하고 협조한다면, 인건비를 줄여서 R&D에 투자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정치개입이 없어지면 노조차원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협상하려고 할거다. 이번에 청와대가 방향을 잘 설정했다고 본다. 배리 앵글 GM 사장이 20일을 데드라인이라고 지정했다고 한다. 남은 2~3주 동안 한국GM 노사가 잘 협상을 한다면 신나게 다시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 이번 기회가 GM뿐 아니라 현대·기아차 등 다른 완성차 업체에 주는 메시지도 크다. 노사 관계가 대립적이고 투쟁적인게 아니라 서로 국제 경쟁력을 살리자는 대화적 국면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 관계 숨통이 트이면 여러형태 차종을 생산할 여력이 생긴다. 우리는 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장하나만 생겨도 몇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에 IMF 사태 이후 처음으로 추가 공장이 생기는 그런 꿈을 꾼다. 그게 진정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