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규제의 역설…‘당첨되면 로또’ 인식 확산

by박민 기자
2018.02.21 05:30:00

강남4구 연내 1만8856가구 공급
주변 시세 반영 안한 분양가에
차익 노리는 ‘투기성 청약’ 우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민 기자]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연내 1만8000가구 넘는 새 아파트가 공급된다. 최근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의식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분양가 통제에 나섰는데 오히려 청약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차익이 발생하는 ‘투기성 청약’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연내 강남4구에서 공급될 아파트는 1만8856가구다. 작년보다 20%(3252가구)가 많은 공급량이다. 강남구가 8018가구로 가장 많고, 서초구 4902가구, 송파구 3846가구, 강동구 2090가구 순이다.

강남4구는 지난 한해 각종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값이 치솟았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이 10.43% 오른 사이 송파(20.05%)·강동(14.58%)·서초(12.23%)·강남구(12.18%)는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급등세를 보였다.

문제는 강남 아파트값이 치솟는 사이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정부 규제로 시세 오름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강남구 개포동에서 분양한 래미안 강남포레스트(옛 개포시영)는 당시 HUG의 분양가 압박으로 3.3㎡당 4244만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앞서 2016년에 분양한 인근 래미안 블레스티지(옛 개포주공2단지)는 지난해 11월 전용 84㎡가 17억3900만원에 팔렸다. 거래가가 3.3㎡당 5200여만원을 기록한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 오히려 시세 차익을 청약 당첨자에게만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주택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분양가가 낮아진 만큼 시세 차익을 기대한 수요가 청약시장에 더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에 들어서는 ‘나인원 한남’도 HUG로부터 분양 보증을 거절당하면서 이같은 우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건설사는 HUG의 분양보증 심사를 통과해야 관할 지자체로부터 분양 승인을 받을 수 있는데, HUG 측은 이 과정에서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인원한남 시행사 대신에프앤아이(F&I)는 평균 분양가를 주변 시세를 고려해 3.3㎡당 6360만원(펜트하우스 포함)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HUG는 기존 최고 분양가인 서울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3.3㎡당 4750만원을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거절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3.3㎡당 1600만원 가까이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분양가 규제는 신규 분양 단지의 도미노식 가격 급등을 막는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시세를 반영하지 않은 과도한 분양가 통제는 아파트 투기 열풍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내고 오히려 돈 있는 사람들에게 ‘로또’의 기회를 안겨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