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제주반도체 대표 "노키아 아픔, 통신기기로 극복"

by강경래 기자
2017.12.18 05:00:00

삼성 반도체 일본주재원 출신, 2000년 메모리 팹리스 창업
노키아 거래처 확보로 승승장구, 창업 4년 만에 매출 814억 달성
이후 노키아 삼성·애플에 밀리며 고전, 메모리 모바일→통신기기 확대 '부활'

(그래픽=이서윤 기자)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모바일 위주였던 메모리반도체 적용범위를 통신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했습니다. 거래처 역시 전 세계 250여개 업체로 다양해졌습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회사가 성장세를 회복할 것입니다.”

박성식(56) 제주반도체(080220) 대표는 17일 경기 판교에 위치한 이 회사 R&D(연구개발)센터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중국, 인도, 동남아 등 신흥시장에서 4세대(4G) ‘LTE’(롱텀에볼루션) 이동통신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통신기기에 쓰이는 메모리반도체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회사 실적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제주반도체는 2005년 본사를 제주로 옮긴 후 사명을 이엠엘에스아이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박 대표가 2000년 창업한 제주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팹리스(Fabless) 업체다. 팹리스는 자체 공장 없이 반도체 개발만을 전문으로 하는 반도체 R&D 중심 회사를 말한다. 통신용 반도체 글로벌 1위인 미국 퀄컴이 대표적이다.

통상 팹리스 업체가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하는 것과 달리 제주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영위한다.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과점하는 분야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올해 기준 1238억달러 규모다. 내년에는 6.8% 늘어난 1321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표는 “삼성전자 일본 주재원으로 일하며 글로벌 반도체 동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특이했던 점은 대만에 있는 중소 팹리스 업체들이 대기업 영역으로만 알려진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파악해보니 대기업은 ‘소품종 대량생산’인 고용량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하는 반면, 대만 팹리스 업체들은 대기업이 채산성이 맞지 않아 하지 않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저용량 제품에 주력하고 있었다. 전체 메모리반도체 시장 중 15% 가량을 차지하는 저용량 메모리 분야에 뛰어들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메모리반도체 틈새시장이 있음을 확인한 박 대표는 삼성전자를 나와 곧바로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시작은 순탄했다. 메모리반도체 글로벌 1위인 우리나라에서 관련 인력을 확보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운도 따라줬다. 글로벌 1위 휴대폰 업체인 핀란드 노키아와의 거래가 성사된 것. 제주반도체는 창업 4년째인 2004년에 매출액이 이미 814억원에 달했다. 이듬해엔 코스닥에 상장했다.



하지만 박 대표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노키아가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고전하며 삼성전자에 1등자리를 내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열면서 노키아는 빠르게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대 거래처였던 노키아의 몰락은 제주반도체 실적에 치명적이었다.

박 대표는 “한정된 거래처와 함께 3∼4개에 불과했던 제품군 등 사업기반이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08년을 기점으로 메모리반도체 제품군 확대와 함께 거래처 늘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단기적 실적 만회를 위해 ‘우드펠렛’(목질계 바이오원료) 등 신사업도 추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드펠렛 등 신사업은 신통치 않았고, 자금 확보를 위해 중국 업체와 추진했던 1000억원 규모 투자 유치도 결국 좌절됐다.

10년 가까이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R&D 투자를 지속했던 박 대표의 노력은 올해서야 빛을 내기 시작했다. 모바일 의존도가 100%에 달했던 메모리반도체 적용범위는 올해를 기점으로 통신기기와 가전, 카드단말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 중 통신기기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거래처도 수백 개로 확대됐다.

과거 D램에 국한됐던 메모리반도체 제품군도 현재 낸드플래시와 ‘멀티칩패키지’(MCP) 등 2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제주반도체는 올해 3분기까지 매출액 797억원(영업이익 42억원)을 올리며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 566억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추세라면 올해 창사 이래 첫 매출액 1000억원 돌파도 유력하다.

박 대표는 “안정적인 제품 생산을 위해 대만 업체와 전략적 협력도 추진 중이다. 내년에는 매출액 1519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우드펠릿 등 부진한 사업은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회사가 ‘환골탈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반도체는 최근 약 168억원을 들여 신사옥을 위한 부지를 매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주지사 건물을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를 통해 낙찰 받은 것. 제주반도체는 이곳에 16층 규모로 사옥 겸 오피스 빌딩을 신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