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자본확충 잰걸음..유로존 은행들은 `반발`

by이정훈 기자
2011.10.13 06:20:01

"EU 집행위, 6~9개월내 자기자본비율 9% 요구"
은행들 "시장서 펀딩 불가능..경제에도 악영향"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당사자인 은행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이날 EU 집행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 확충안에 대해 은행들은 시장상황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거론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위기에 빠진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며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을 더 높이기 위해 공조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위원장은 "이제 은행들에 대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때"라고 말해 대책에 속도를 낼 뜻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주요 외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 확충 기준을 핵심 자기자본비율(core tier-one capital)으로 9%를 요구할 전망이다. 지난 7월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당시에는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5%로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충격이 더 큰 만큼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또 확충 방식에 대해 바호주 위원장은 "먼저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시도한 뒤 실패했을 경우 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돼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유로존 대형 은행들은 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핵심 자기자본비율 9%와 시장에서의 자본 확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은행들이 자산을 매각하고 대출을 줄이는 등 은행 신용도와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유로존 대형 은행들은 EU가 요구하는 9%의 핵심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값 비싼 신규자본을 조달하기보다는 자산을 매각하는 쪽을 택할 것이며 결국 이는 크레딧을 추가로 악화시켜 유로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는 BNP파리바와 소시에떼제너럴 등 프랑스 은행들 중심으로 이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 은행들에게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유로존 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은행들의 주가가 이렇게 하락한 상황에서 우리가 왜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가"라고 반뭉했다. 유로존 은행들의 주가는 현재 평균적으로 장부가의 60%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또다른 은행의 최고위층은 "지금 시점에 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펀더멘털 차원에서 봐도 말이 안된다"며 "이렇게 본다면 은행들은 자산을 팔고 대출을 회수해 몸집을 줄이는 디레버리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은행들이 이같은 전략을 쓸 경우 유로존 경제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유로존 당국자들도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유럽 기업들은 자금 조달의 80%를 은행들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기업들의 30%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바호주 위원장은 "직원들에 대한 높은 보너스를 줄이고 배당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단만으로는 9% 비율을 맞추기 어렵다.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필수인데, 굳이 조달 비용을 따지지 않더라도 투자 수요가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다.

한 유럽 투자은행 고위 임원은 "지금은 누구라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국채보유에 따른 상각손실을 높여야할 판에 신주 발행에 참여할 투자자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