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피터팬 증후군만 키우는 대기업 인식 왜곡
by최은영 기자
2024.08.12 06:00:00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우리 사회엔 사실 여부를 떠나 불투명 경영, 중소기업 발전 저해 등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 있다. 이러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은 대기업 규제 확대로 이어지곤 했다. 우리만의 독특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대형마트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등이 예일 것이다. 규제만이 아니다. 기술개발, 정부조달 등 다양한 정책에서 대기업들은 차별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이 기업규모 선택의 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우리 대기업의 역할과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먼저 이러한 차별은 중소·중견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을 초래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해 가야 하나 성장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경향이 확산한다. 2023년 대한상공회의소가 10년 내 중소기업을 졸업한 300개 중견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중 77%는 중소기업 졸업 후 정부 지원 축소와 규제 강화를 체감했다. 30.7%는 정책 수혜를 위해 중소기업으로의 회귀를 희망한다고 한다. 조세 부담 증가(51.5%), 정책금융 축소(25.5%), 수·위탁거래 규제 등 각종 규제 증가(16%)가 이러한 피터팬 증후군의 요인이 된 것으로 지적됐다.
한편 기존 대기업조차 기업 쪼개기에 나서거나 새로운 분야 진입을 꺼린다. 가구 분야가 좋은 예다. 2011년께 국내 대기업 가구 업체들은 정부의 중소기업제품 우선 구매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기업 쪼개기에 나선 바 있다. 부서들을 쪼개 몇 개의 중소기업을 만들어 정부 혜택을 받고자 한 것이다. 그 당시 국회가 쪼개진 기업에 대해서는 제도 활용을 배제하는 입법을 해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정부의 특정 제도가 기업규모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골목상권 보호 정책도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예를 들어 빵집, 커피숍, 잡화 분야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은 소상공인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좌절되면서 이 분야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은 탄생할 수 없게 됐다. 국내에서 노하우를 축적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한국의 스타벅스, 맥도날드, KFC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우리의 대기업 수준은 열악하다. 2023년 현재 포천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의 1사당 평균 매출액은 611억 달러로 주요국 중 가장 낮으며, 전자·반도체, 자동차, 재료·소재·금속, 화학 등 4개 업종의 경우 글로벌 1위 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국내 1위 기업 대비 1.7~4.3배 수준이나 높다.
한편 세계의 유니콘 기업 수는 2019년 449개에서 2023년엔 1209개로 늘면서 169.3% 증가했고 기업 가치는 2019년 1조 3546억 달러에서 2023년 3조 8451억 달러로 183.9%나 늘었으나 같은 기간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수 증가는 4개에 불과했고 세계에서의 비율은 1.0%포인트 감소했다. 한국 유니콘 기업의 가치는 같은 기간 12.1% 증가했으나 그 비중은 2.1%에서 0.8%로 감소했다. 세계의 인공지능(AI) 유니콘 기업 200개 중 한국 기업은 한 개도 없다.
대기업 홀대는 이제 우리를 역습하고 있다. 대한상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 대학생 중 64%는 대기업, 44%는 공공부문 취업을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1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국 중 최하위이고 OECD 전체 평균 3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 근로자들의 중소기업 대비 결혼율이 약 1.5배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는 우리의 저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정부는 중소기업의 피터팬 증후군 대응책을 발표했다. 좋은 일이나 여기에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글로벌 대기업이 국내에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대기업은 오너들의 일자리이기도 하지만 많은 청년과 근로자들이 희망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