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핀테크 성지'로 부상한 베트남...'틈새' 공략하는 카드사

by서대웅 기자
2022.11.09 05:40:00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특별기획>
카드보단 ''현금''..QR결제 급성장
당국 핀테크 지원, 유니콘도 등장
베트남 중산층 빠르게 증가.."기회"

[하노이(베트남) =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1.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 남변의 카페 거리는 베트남 젊은 층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전망 좋은 한 카페를 들렀지만 그곳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하노이 ‘관광 1번지’인 뚜레공원 인근의 한 서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장 주인들은 QR코드를 가리켰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라면 신용카드 사용은 쉽지 않아 보였다.

2. ‘동남아시아의 우버’인 그랩(Grab)은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필수품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이곳에서 외국인에게 그랩은 유일한 교통수단이나 다름없었다. 현지인들은 교통 기능뿐 아니라 음식 주문, 마트 배송, 기프티콘 선물, 공과금 납부 등 각종 생활밀착형 결제 서비스를 그랩에서 이용한다. 플랫폼 영향력이 커지자 그랩과 협업하려는 금융회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금과 선불충전 결제 서비스 제공이 그랩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베트남 결제시장은 이처럼 핀테크(QR·선불충전 결제) 이용률이 높지만 그 기반은 현금 결제에 가깝다. 최근 결제시장에 주요 플레이어로 들어온 빅테크 플랫폼을 이용한 주요 결제 수단도 현금이 기반이다. 한국 신용카드 회사들은 이러한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국제공항 입국 출입문에 VN페이 광고가 부착돼 있다. VN페이는 베트남의 두 번째 유니콘으로 등극한 빅테크다. 베트남 전역에서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서대웅 기자)
베트남이 ‘현금 중심 사회’라는 점은 베트남 중앙은행(SBV)의 신용 제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여신전문금융회사, 즉 수신(예금) 없이 여신(대출)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크게 파이낸스사(16곳)와 리스사(10곳)로 나뉜다. 이중 개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려면 파이낸스사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베트남 파이낸스 업계는 카드보다 대출(파이낸스)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결제 부문에서 본인 신용을 제공하기를 꺼리는 문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베트남에선 쇼핑몰 이용 시 물건을 배송받은 뒤 배달 기사에게 현금을 건넨다. 신용카드 결제는 ‘신용’을 기반으로 우선 결제하고 일정 기간 뒤 한번에 결제금을 내는 여신 구조다. 현지 한 주재원은 “신용 공여 문화가 활발하지 않아 파이낸스사들은 개인 신용대출, 신차 대출, 가전할부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핀테크들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현금으로 결제하되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로 시장을 사로잡았다. 신한금융지주의 김선일 신한퓨처스랩 하노이소장은 “베트남에 유니콘 기업이 5곳인데 그중 페이 업체인 VN페이가 2호 유니콘”이라며 “최근엔 ‘동남아의 아마존’인 씨(Sea)그룹의 에어페이(Air Pay),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쇼피(Shopee) 등도 결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BV의 핀테크 육성 정책은 베트남을 ‘동남아 핀테크 허브’로 부상시켰다. SBV는 2025년까지 현금사용률을 8% 미만으로 낮추는 ‘현금 없는 결제를 위한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내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의 93%가 디지털 결제 분야에 집중됐다. 그 결과 핀테크 사용자 수는 2017년 2650만명에서 지난해 5320만명으로 5년간 2배 늘었다.

하노이 ‘관광 1번지’인 뚜레공원 인근의 한 서점 계산대에 QR코드가 놓여 있다. 베트남에서 QR코드 결제는 현금 기반 결제로 현금 자산이 부족하면 결제가 불가능하다. (사진=서대웅 기자)
이러한 지급결제 환경에서 국내 신용카드사가 들어갈 틈은 좁아 보였다. 하지만 베트남에 진출한 카드사들은 오히려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선불충전 방식인 QR코드 결제와 미래 소득을 기반으로 한 신용카드 결제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QR코드로는 보유한 현금자산 내에서만 소비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는 그 이상의 소비가 가능하다.

김종극 롯데파이낸스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 경제성장 추이와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베트남 고객 성향을 고려하면 신용카드 시장은 앞으로 견고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태준 신한베트남파이낸스 법인장도 “베트남 경제 성장률만큼 중산층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베트남의 젊은 인구 구조는 한국의 선진 금융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 요소”라고 했다.

이러한 판단 아래 국내 카드사들은 베트남 신용카드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지 업계 5위인 신한베트남파이낸스는 지난 8월 신용카드를 출시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지금은 비대면 발급 신청부터 심사까지 15분 만에 완료하고 실물카드 없이 카드 결제가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빅데이터 역량으로 현지 고객을 공략해 2024년 업계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파이낸스는 BNPL(선구매 후결제)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BNPL은 소액의 신용한도를 제공해 후불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서비스로 신용카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구축한 BNPL 서비스 확대를 위해 지난 8월 ‘베트남의 쿠팡’ 격인 티키(Tiki)와 손잡았고 연내 서비스를 출시해 현지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계획이다.

결제망 구축 사업을 벌이는 비씨카드는 지난해 결제 단말기인 POS(포스) 점유율 1위 업체 ‘와이어카드 베트남’을 인수하며 현지 신용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SBV 산하 기관인 국영결제중계망 사업자 NAPAS와 비현금 결제 협력 관계를 맺었다. 한국을 찾는 베트남 관광객은 환전 없이 자국 신용카드와 QR코드로 국내 비씨카드 가맹점 340만 곳에서 결제할 수 있고, 베트남을 방문하는 비씨카드 이용자도 NAPAS 가맹점에서 결제가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