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빅스텝에 인사까지 숨가쁜 100일…일각선 “정부에 끌려다니냐” 불만도

by이윤화 기자
2022.07.29 07:00:00

29일 이창용 총재 취임 100일
주 1회 업무포럼으로 자유로운 토론 문화 조성
IMF식 내부 경쟁에 파격 인사…빅스텝 금리 인상까지
정부와 너무 잦은 회의…금통위 의결 없이 발권력 동원
한국은행, 정부의 연구기관화 되는 것이냐 우려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8년 만에 등장한 외부 출신 총재의 조직 문화 개선과 통화정책 운영, 대외 소통 행보를 두고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취임 이후 한은의 조직 문화 개선과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대외협력·교류 일정을 소화하며 숨 가쁜 석 달을 보냈다. 특히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한은의 조직 쇄신과 6%대로 오른 물가 통제를 위해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이창용(가운데)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총재는 취임 초기부터 강조했던 한은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주제 발표를 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했다. 이 회의는 한은 직원이면 누구나 웹캠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서베일런스 미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또 IMF 블로그를 차용해 금융·경제 주요 현안에 대한 임직원의 분석과 견해를 공유하기 위한 공식 블로그를 신설했다. 조직의 수평적 문화를 확산해 역동성을 끌어 올리고 한은 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 개편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 총재는 4월 21일 취임사에서 “IMF에 근무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이슈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를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궁금한 사항에 대해 ‘원콜어웨이(one call away)’, 즉 전화 한 통이면 몇 권의 책을 찾아 읽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의 이런 조직문화 개선 시도에 대해선 양면의 평가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실무진의 좀 더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도 있지만, 토론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외부와의 소통 강조에서 책임성이 커지는 만큼 부담도 같이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IMF를 따라 만든 한은 블로그 역시 기존에 발표된 자료를 국장급 인사들이 요약 정리해 공유하는 정도라 소통 강화가 조직에 녹아들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재 발탁 방식도 눈에 띈다. 19일엔 취임 후 첫 인사로 이종렬 금융결제국장을 부총재보로 승진시켰다. 부총재보 승진을 위해 4명의 국장급 인사의 면접을 보는 등 IMF식 인사 방식을 적용했다. 그동안 금융결제국장 출신의 부총재보 승진이 없었다는 점도 기존 관행을 벗어난 것이다. 이 부총재보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 등 주요 현안을 이끌어 갈 적임자라는 평가다. 동시에 조사와 통화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진 부총재보들의 전문성을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발탁됐다.



취임 당시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것이란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던 만큼 거침없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관심을 모으더니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도 과감했다. 물가상승률이 6월 6%로 오르자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도 명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13일 빅스텝을 한 이후 이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3분기 말, 4분기 초 고점을 찍는 등 경기, 물가 상황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앞으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릴 것”이라며 전제를 깔긴 했지만 비교적 명확하게 포워드 가이던스를 줬다. 러시아와 유럽간 에너지 전쟁이 격화될 경우 이 총재의 이런 발언들이 부메랑이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직설적인 화법은 ‘빅스텝’ 소동으로도 이어졌다. 5월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첫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빅스텝을 배제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혀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이후 한은은 ‘원론적인 발언’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그 뒤 물가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급등하면서 빅스텝이 현실화됐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기삿거리가 안 될 정도로 추 부총리와 자주 만나 소통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금통위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발권력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논란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지난 24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선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에 1200억원을 출자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당시 금통위 의결을 거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를 두고 금통위원은 물론 한은 직원들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비상회의는 이번 주에만 두 번(24일, 28일) 개최됐는데 발표 내용이 수장급 회의에서 나오기엔 무게감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보여주기식’ 행사에 한은 총재가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대로 한은이 끌려다니거나 입맛을 맞춰 주는 것이 아니냔 비판을 받기 십상”이라면서 “해묵은 이슈로 묻혀 있던 한은의 독립성 문제로 비판받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우려했다. 전임 이주열 총재와도 비교한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이주열 총재는 최소한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했고 이렇게 비상 거금회의에도 일일이 참석하지 않았다”며 “주금공 출자도 이 총재였다면 어림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이 총재가 이를 너무 강요한 나머지 한은이 마치 정부의 정책을 받쳐주는 연구기관화되고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