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아베 사망과 함께 사라지나[김보겸의 일본in]

by김보겸 기자
2022.07.10 09:31:06

9년간 엔화 찍어내며 경기부양 꾀했지만
아베 사망한 데다 BOJ 총재 내년 4월 퇴임
금리 인상시 채무초과·이자비용 급등 부담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생전 펼친 ‘아베노믹스’ 결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엔저와 주가 상승. 그러나 지난 8일 아베가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엔화 가치는 올랐으며 장 초반 오르던 증시도 상승폭을 줄였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연설하던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사진=AFP)
아베의 피습 소식이 전해진 지난 8일 오전 11시40분 135엔90전이던 엔·달러 환율은 치솟기 시작했다. 오후 1시 달러당 136.39엔까지 오른(엔화 약세) 엔화는 이내 다시 강세를 띠면서 135엔97전으로 내려왔다. 안전자산인 엔화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시장도 이날 상승 출발하며 오전 한때 1.48%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아베의 피격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상승분을 반납하며 전날보다 0.10% 오른 2만6517.19에 장을 마감했다.

두 차례 집권하며 총 8년 9개월이라는 역대 최장기 총리를 역임한 아베가 사망하면서 그의 유산인 아베노믹스도 종지부를 찍을지 주목된다. 언제적 아베 정책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2020년 건강상 이유로 총리 자리를 내려놓고서도 그의 정책은 계속됐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만큼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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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2012년 총선에서 압승한 뒤 일본은행 윤전기에서 엔화를 찍어내는 아베노믹스 시행에 나섰다. (사진=AFP)
아베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를 살리려면 돈을 뿌려야 한다며 아베노믹스를 내세웠다.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정부도 재정을 풀면 성장이 따라올 것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주축으로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2011년 동일본대지진까지 겹치면서 침체한 일본 경기는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로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2012년 11월 저점을 찍은 일본 경제가 2018년 10월 피크를 기록하기까지 71개월 연속 확장하면서다.

아베노믹스를 진두지휘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도 아베의 뜻을 이어갔다. 구로다는 2013년 총재 임명 이후 2017년에도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유임된 바 있다. 아베가 건강상 이유로 지난 2020년 아베가 총리직을 내려놓고 그 사이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로 총리가 두 번 바뀔 동안에도 금융완화 기조를 고집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왼쪽)와 악수하는 아베 전 총리.(사진=AFP)


그런 그가 내년 4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아베노믹스의 종료를 예고하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돈을 풀면 성장은 뒤따라온다고 주장해 온 아베와 달리, 현 총리 기시다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한다. 소득 재분배에 주력하고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올려 재정건전성도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시다가 내년에는 자신과 경제운영 철학을 같이하는 총재를 임명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후임으로 거론되는 이들은 “구로다보다 덜 비둘기파적”라는 평가다. 구로다를 보좌한 아마미야 마사요시 현 일본은행 부총재와 나카소 히로시 전 일본은행 부총재가 차기 총재 후보군에 있다. 특히 나카소 전 부총재의 경우, 지난 5월 펴낸 저서에서 일본은행이 2% 인플레 목표를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해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카소가 일본은행 총재에 오를 경우 구로다와의 결별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0일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서도 아베노믹스에 마침표가 찍힐 수 있다. 야마카와 테쓰후미 바클레이스 일본경제연구책임자는 “자민당이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아베노믹스로 엔저정책을 견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10년 만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다, 아베노믹스와 선을 그으려는 기시다가 이끄는 현 정권에 대한 신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늪에서 돌파구로 마련한 아베노믹스가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AFP)
다만 당장 아베노믹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행 차기 총재는 ‘독이 든 성배’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2013년부터 10년 가까이 이어진 금융완화책에서 적절히 발을 빼야 하지만, 일본은행에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먼저, 금리를 올리면 일본은행은 채무초과에 빠질 위험이 크다. 지금도 일본은행은 장기금리를 잡기 위해 10년물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6월 한 달 동안에만 16조2038억엔(약 155조314억원)을 매입하면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문제는 작년 상반기에는 평균 0.226% 금리로 국채를 대거 매입했지만, 지난 3월 말에는 0.25% 금리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데, 이미 일본은행이 어마어마하게 사들인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평가손이 발생했다.

일본은행이 시중은행에 내줘야 하는 이자비용이 치솟을 수 있다는 점도 금리 인상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다. 일본은행 당좌예금은 2022년 3월 말 563조엔(5386조원)으로, 1년만에 40조엔 늘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당좌예금은 일본은행이 ‘은행들의 은행’인 만큼, 시중 민간은행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돈을 말한다. 당좌예금 잔고가 563조엔에 달하는 상황에서 2%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늘어나는 이자비용만 11조엔을 넘는다. 이자비용이 자기자본(약 10조엔)을 넘어서면 일본은행은 사실상 채무초과에 빠지게 된다.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따르면 은행 채무초과가 발생해도 정부가 손실보전을 할 수는 없다.

아베의 유산 아베노믹스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안전자산 엔화의 힘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풀고 은행이 찍어낸 돈이 부유층에만 집중될 뿐 낙수효과는 없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세 번째 화살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아베노믹스는 미국발 금리인상과 원재료 상승 등으로 더 이상 양적완화를 고집하기 어려워졌다. 아베는 사망했지만 아베노믹스의 여파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 정책에 고민을 안기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