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정년·임금체계... 新노동규칙 필요하다

by송길호 기자
2021.06.03 05:5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화 하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우리도 올 11월이면 집단면역을 달성하고 길고 길었던 사태의 종지부를 찍고 경제도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생존적 일자리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소득의 불균형은 더 커졌고 임시일용직, 자영업자, 노인 등 한계직종의 일자리 자체가 쪼그라드는 데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비대면, 온라인 경제로의 전환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고용은 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디지털 경제, 산업용 로봇 확산이 빠른 한국 경제 상황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취약계층의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시장 환경이 바뀌면 제도도 그에 맞게 손질하고 사회 구성원의 인식도 바뀌어야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제 신노동규칙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 우리 고용시장은 정년과 최저임금이라는 두 가지 안전판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하면 몇 살까지 일하게 하고 얼마 이상의 급여를 주라는 가이드라인을 국가가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늘어난 평균수명에 비추어 봤을 때 은퇴시점이 너무 이르다는 점이다. 퇴직 이후에도 20~30년을 더 일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제도로 대표되는 경직된 임금 구조가 노년층의 경제활동 기회를 점점 줄여가고 있다는 얘기다. 주차관리, 경비, 주유, 실버택배 등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들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점점 사라지고 있고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차라리 정년제도를 없애 중장년층이 능력에 따라 더 오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하고 은퇴 후 저임금 단순작업 일자리에 원하는 만큼 종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비용을 감소시키는 길이다. 사회적 합의로 임금을 직종, 연령, 지역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면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는 속도를 늦추고 더 많은 노년층이 정년에 관계없이 취업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어 노인빈곤 문제를 완화하고 노인들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일자리의 도태 속도를 늦춰 우리 사회가 산업구조와 고용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년제도 폐지가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가로막을 것이라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초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적 특성을 간과한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2027년 전체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 대비 7% 감소할 때 20대 청년인구는 20% 이상, 140만 명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청년인구 약 65만 명을 모두 생산현장에 투입해도 몇 년 후엔 인력난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지금 당장 정년제도 폐지를 논의한다 해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수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수년 내로 다가올 노동인구 부족에 대비하지 않으면 지금은 청년실업을 걱정하지만 몇 년 후엔 고질적인 노인빈곤에 대규모 인력난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 노동인구의 과감하고 적극적인 확대가 절실한 것이다.



이 와중에 지난 21일 가사근로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가사관리사, 베이비시터, 간병인 등이 법적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퇴직급여법 등의 보호를 받게 된다. 주52시간과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되고 4대보험 가입과 퇴직금도 보장받게 된다. 결국 여성의 사회참여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여성들이 가정이 아닌 산업현장에서 돈을 버는 것만을 부가가치로 간주했지만 이 조치를 통해 앞으로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전업주부에 대한 법적특례도 필요할 수 있다. 넓게 보면 옆집에서 일하면 근로자가 되고 우리 집에서 일하면 근로자가 아닌가? 그럼 서로 집을 바꾸어 근로해야 할까? 라는 인식도 가능하다. 전업주부도 근로자로서 일반 근로소득자와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는 조치가 당연해진다면 이는 새로운 규범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유계약도 새로운 규범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공유경제를 통한 고용증대를 유도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와 회사 간의 1:1 계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기업들이 정규직 대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과 임시로 계약을 맺고 고용하는 ‘긱경제(gig economy)’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들을 과감히 회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계약을 맺는 주체로 인정하고 이들에게는 전통적인 노동관련 법령이 아닌 별도의 근로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자유계약에 의한 파트타임 근로자는 최소한의 임금은 보장하되 고용과 해고, 4대보험의 최소화 등을 통해 관련 법령을 유연히 적용하고, 프리랜서들은 지속적인 소득 증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상황에 빗대 미래를 최대한 예측할 수밖에 없다. 초저출산과 고령화, 기계화의 진전으로 사람의 영역이 급속이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오던 것이다. 이제 경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정년제도와 임금체계를 과감하게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한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키오스크, AI, 스마트 공장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이러한 변화가 사람을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정년폐지, 신노동규범, 임금자유화와 같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제도와 시스템은 그릇이기에 우리 경제 구성원과 나아가 국가까지 더불어 함께 공생하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할 때이다. 규범 또한 이제부터 창조 되어야 될 것들이다. 다만 이것만으로 완화만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완벽히 대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노동인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