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기소 이후, `제2 사법농단` 막을 김명수式 사법개혁 주목

by노희준 기자
2019.02.11 06:10:00

[양승태 구속기소]②사업개혁으로 무게중심
내용도 퇴색된 데다 입법 과정도 험로 예상
개혁 원안보다 ''대법원장 권한'' 분산 후퇴
김경수 지사 판결 이후 사법개혁 목표 흐릿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식(式) 개혁도 결국 자기사람 심는 것밖에 안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김 대법원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검찰 출신 한 서초동 변호사)

“법원 내부의 세력간 갈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추락한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개혁이다”(서울 지방법원 한 판사)

재판거래와 법관 블랙리스트 등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소로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제 관심은 수사에서 제2의 사법농단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사법개혁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하지만 김명수식 사법개혁을 두고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안 자체가 사법농단 원인으로 지목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이라는 애초 취지에서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여당이 김경수 경남도지사 1심 판결에 대한 불복을 사법 적폐청산과 열결하면서 김 대법원장 개혁안의 입법화 과정도 험로가 예상된다. 사법개혁의 실체가 `김경수 구하기`라는 정쟁의 꼬리표를 달게 됐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의견을 발표했다. 이어 법원행정처를 통해 국회에도 이를 전달했다. 김명수식 사법개혁의 내용이 여기에 담겨있다. 개혁안의 핵심은 법관 인사와 예산을 주무르면서 사법농단의 진원지 역할을 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합의제 기구로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는 데 있다.

문제는 사법행정회의의 위상과 구성 등이 당초 개혁안에서 후퇴했다는 점이다. 각계인사가 참여해 개혁안의 밑그림을 그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와 이를 이어받아 후속작업을 마무리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김 대법원장에게 제출한 원안에는 사법행정회의가 대법원장을 대신해 사법행정의 총괄권한(심의ㆍ의결ㆍ집행)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김명수 개혁안에는 사법행정회의를 심의·의사결정기구로 축소했다. 나머지 집행 권한은 대법원장이 기존처럼 행사한다는 얘기다. 사법행정회의 구성에서도 의장을 맡는 대법원장을 제외한 법원 내부(법관+법원공무원)와 외부의 구성비율이 5대5에서 6대4로 바뀌었다. 개혁적인 외부 목소리 투입 통로를 차단하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판사 보직에 관한 인사안 확정에는 법관이 아닌 사법행정회의 위원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아예 선을 그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실상 인사권을 가지고 판사들을 쥐락펴락한 것을 감안하며 가장 중요한 문제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검찰 간부는 사견임을 전제로 “판사나 검찰은 돈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인 조직”이라며 “결국 대법원장이 쥐고 있는 판사 인사권을 각 지역 차원에서 어떻게 잘 소화, 분산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

사법 개혁안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변심에는 법원 내부의 의견수렴 절차가 있었다. 김 대법원장은 후속추진단이 내놓은 결론을 두고 법원 설문조사, 전국법원장회의 등을 거쳤다. 법원 조직을 뜯어고치는 일이니 이해관계자가 의견을 내놓는 건 일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하지만 이는 셀프 개혁의 혐의를 벗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사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서선영 변호사는 “법원 내부 의견 수렴절차는 신중함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사법발전위원회와 추진단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한 절차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법원은 스스로를 다시 개혁의 주체로 올려놓고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 개혁안에 대해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견해, 미흡하다는 견해가 모두 있을 수 있지만 사법부 개혁안에 대한 대법원장의 취지는 사법부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개혁의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개혁안 제출은 개혁의 완결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지사의 1심 판결을 전후로 사법개혁에 사법 불복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끼여든 것도 김 대법원장 개혁안의 입법 과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은 결국 법원조직법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효력을 본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공범 혐의로 구속되자 1심 재판장인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사법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법개혁을 밀어붙이겠다고 역설했다. 그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데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 등 다른 야당의 반발을 사고 사법개혁이 재판불복과 지근거리에 있다는 혐의를 불러일으켜 국민들에게 사법개혁의 목적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소속 한 변호사는 “사법개혁의 목표와 원칙에 정당의 이해 관계 관철이라는 다른 요소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며 “왜 사법개혁을 하는지에 대해 여야가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의 재판청탁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