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외감법 시대]뒤바뀐 갑을 관계…회계법인이 '기업 결산능력' 따져 고른다
by이명철 기자
2019.01.07 05:31:00
감사 품질이 경쟁력…“수임 단계부터 ‘좋은 기업’ 선별”
인력 관리에 방점…임금 인상하고 근무환경 개선에 역점
글로벌 파트너 활용…인공지능·로보틱스 등 신기술 도입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신(新) 외감법은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제도다. 감사인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 정책 취지에 맞춰 감사 품질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다.”
신 외감법이 본격 적용되는 올해 회계 감사는 변화의 전기를 맞게 됐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회계처리와 외부감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신 외감법 도입으로 ‘빅4’로 꼽히는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도 감사품질을 높이겠다며 인적자원 강화와 첨단기술 도입에 적극 나섰다. 기업들은 높아진 회계 감사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신 외감법이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시행령 등을 말한다. 일정 기간 정부가 감사인을 정해주는 주기적 지정제와 기업별 감사 시간을 정의한 표준감사시간이 주요 내용이다. 기업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 탓에 회계 투명성은 뒷전에 밀리기 일쑤였는데 신 외감법은 이러한 감사 부문의 구조적 한계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평가다.
윤훈수 삼일PwC 감사부문 대표는 “정부가 9년 중 3년을 감사인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경영진과 이사회가 일체인 경우가 많아 감사인 독립성이 작동하기 힘든 한국 기업 특성을 감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 외감법은 2019년 사업연도부터 반영돼 여유가 있지만, 감사인 법적 책임 강화가 작년 사업연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올해 초 감사시즌 회계감사는 예년보다 한층 깐깐해질 것으로 보인다. 회계부정 관련 형사처벌이 징역 10년 이하로 강화되는 등 감사인의 독립성만큼이나 법적 책임 또한 커졌다. 해마다 감사의견 비적정에 따른 상장폐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올 초 감사시즌을 맞아 기업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경섭 삼정KPMG 감사부문 대표는 “회계 선진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는 그만큼 감사 실패가 발생할 경우 엄청난 책임을 지우겠다는 의미”라며 “감사인에 대한 책임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적용돼 회계 부정에 대한 감사는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4대 회계법인은 변화하는 감사환경에 맞게 감사품질을 대폭 높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앞으로는 감사의 양보다 질이 회계법인 평판이 되기에 수임 단계부터 까다로운 검증 절차가 적용될 전망이다. 감사 업무를 따기 위해 대형 회계법인들이 줄을 서던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전용석 딜로이트안진 감사사업본부장은 “불가피한 경우 성장을 양보하더라도 ‘좋은 기업’ 확보에 집중함으로써 결산 능력을 갖춘 기업들을 선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박용근 EY한영 감사본부장도 “리스크가 많거나 자체 비즈니스가 좋지 않은 기업은 회계 분식의 유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 수임이나 제안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회계법인들의 1순위 투자 분야는 인력이다. 우수 인재가 곧 감사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회계사들 기본급을 15% 인상한 삼일을 비롯해 4대 회계법인은 일제히 직원들의 임금을 10% 안팎 올렸다. 회계사들의 업무 일정을 전담 관리하거나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팀을 만드는 등 지원부서(Back office)의 전문성도 강화하고 있다. 다른 분야로 인력 유출이 큰 특성상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임금 인상이나 근무환경 개선 등 다양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기술 도입과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기업 재무제표와 장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적용해 업무 부담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감사 정확도도 높이고 있다. 각각 제휴를 맺고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들의 선진 기법을 들여오기도 한다.
앞으로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같은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회계법인들도 감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윤 대표는 “데이터가 방대해지고 새로운 산업이 늘어나면서 회계사들에게 디지털 역량은 필수가 됐다”며 “혁신기업 등장 속도에 맞춰 감사 분야 전문성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